국민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놓고 정부와 국회의 '엇박자'가 나타나고 있다.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걷으려는 정부와 표심을 얻으려는 국회가 힘겨루기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사상 최악의 세수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연말에 종료하는 비과세·감면 조항을 정비할 방침이지만, 국회에선 벌써부터 연장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세금감면 조항의 존폐를 결정할 입법권은 국회가 쥐고 있기 때문에 이미 제출된 법안들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조세감면 정비 계획도 일찌감치 맥이 풀릴 전망이다.
◇ 농협 예탁금은 '하이패스'
국회의원들이 가장 활발하게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법안은 조합 예탁금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조항이다. 농협과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등에 예치한 예탁금에 대한 이자와 배당 소득세를 내지 않는 내용인데, 올해 말까지만 적용될 예정이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은 2018년 말까지 3년간 연장하는 법안을 제출했고,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은 2020년 말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은 지난해 10월 조합 예탁금을 3년 연장하는 법안을 가장 먼저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의 연이은 연장 시도와 달리, 정부는 내심 조합 예탁금 폐지를 원하고 있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조합 예탁금 과세특례 조항은 올해 9100억원의 세금을 깎아줄 것으로 추정됐다. 이 조항만 예정대로 없애면 5년간 5조원에 달하는 세수를 추가로 확보하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현재 기재부는 조세특례 심층평가 대상에 올려놓고, 연장 또는 폐지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 "택시도 좀 봐줍시다"
택시 사업자를 향한 정치권의 관심도 뜨겁다. 일반택시 운송사업자는 올해 말까지 부가가치세 95%를 감면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연장하는 법안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찬열 의원과 나성린 의원은 조합 예탁금에 이어 택시 운송사업자에 대한 조세감면 일몰을 각각 3년씩 연장하는 법안을 냈다.
기재부가 추정한 올해 감면 규모는 1630억원이며, 내년부터 3년간 더 시행하면 매년 2000억원 정도의 세금을 추가로 지원하게 된다. 제도가 예정대로 폐지되면 6000억원의 세수가 국가로 귀속되지만, 연장될 경우 그 만큼의 혜택이 택시 사업자에게 돌아간다.
택시 부가가치세 감면 조항도 기재부의 조세특례 심층평가 대상에 올라 있다. 기재부는 올해 말 일몰이 도래하는 조항 가운데 300억원이 넘으면 심층평가 대상으로 지정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종합적 평가를 받게 된다.
◇ 농어민은 '화끈하게'
농어민에 대한 세금 감면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농어업용 및 연안여객 선박용 석유류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규정을 2025년 말까지 10년간 연장하는 법안을 내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연평균 1조6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하고, 10년간 16조원이 지원되는 '초대형' 법안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은 지난해 아예 농어민 관련 세금감면 7개 조항의 일몰을 없애고 영구화하자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어차피 농어민 세금 조항은 정치권에서도 이견이 없어 매번 자동 연장하는 추세지만, 조세특례제한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통과되진 못했다.
조세감면 조항들은 세금의 형평성을 세우기 위해 정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취약계층까지 혜택을 빼앗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나성린 의원은 "조세감면 축소는 대기업과 고소득층 위주로 하고,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배려가 필요하다"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세금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증세도 동시에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