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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귀재' 롯데..그가 달라졌다

  • 2015.02.24(화) 16:02

부동산 중심 전략서 선회 '소유에서 공유로'
롯데쇼핑·호텔롯데, KT렌탈 1兆투자 인수결정
렌터카시장 급성장세.."혼자 힘으로 흑자 가능"

▲ 롯데그룹은 KT렌탈 인수에서 기존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막판 역전극을 펼친 것도 흥미롭지만, 토지와 건물 등 눈에 보이는 자산에 주목하던 롯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1조원을 투자했다는 점에서 큰 변화로 여겨진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지난해 롯데쇼핑이 백화점 4곳과 마트 8곳을 '매각 후 임차(Sale & Lease back)' 방식으로 처분하자 회계전문가들 사이에선 "롯데가 부동산을 팔 정도면 국내 부동산시장이 끝물에 이른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롯데쇼핑의 유형자산은 장부가액 기준 17조3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토지와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른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생산라인을 확충해 미래를 준비했다면 롯데쇼핑은 땅을 사들여 그 위에 건물을 짓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식으로 성장했다.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호텔롯데가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6%에 불과하지만 자산비중은 14%에 달한다. 지난해 9월말 현재 호텔롯데가 보유한 유형자산은 6조2000억원이다. 롯데쇼핑과 마찬가지로 호텔롯데도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이 유형자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 롯데쇼핑·호텔롯데, 이번엔 달랐다  

두 회사(롯데쇼핑·호텔롯데)는 이번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써내 KT렌탈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롯데측은 KT와 계약협의를 끝내는대로 추가 실사없이 인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는 롯데그룹의 인수합병사에서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유력후보에서 빠져있던 롯데가 본입찰 막판에 가격을 더 올리며 역전극을 펼친 것도 흥미롭지만, 부동산으로 성장한 회사가 동산(자동차)을 취급하는 회사를 인수한 것도 롯데그룹 인수합병에선 큰 변화로 여겨지고 있다.

롯데그룹이 지난 10년간 1조원 이상 쓴 M&A를 보면 그룹의 주력사업과 연관됐거나 부동산과 같은 유형자산을 많이 가진 기업이 주된 인수대상이었다. 유통쪽에선 GS리테일로부터 사들인 백화점·마트(1조3400억원)가 그렇고 하이마트(1조2480억원)도 예외가 아니다. 호남석유화학이 2010년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1조5000억원)을 인수한 것도 화학분야에서 사업확장을 노린 측면이 컸다.

하지만 KT렌탈은 이 같은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KT렌탈의 유형자산(1조9000억원)은 길어야 5년이면 중고시장에 매물로 내놓아야하는 렌탈자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토지와 건물 등 롯데가 선호하는 부동산 자산은 KT렌탈 유형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통·식음료·화학 등 기존 사업과 당장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세진 BS투자증권 연구원은 "시너지만 보면 롯데보다 자동차 관련사업을 하는 SK네트웍스와 한국타이어가 더 크지 않겠냐"며 "그럼에도 롯데가 KT렌탈 인수에 나선 것은 새로운 사업을 챙겨놓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저물어가는 '소유의 시대'

지역별 영세산업으로 분류되던 렌터카 산업은 2005년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 10년간 국내렌터카 등록대수는 9만대에서 43만대로 연평균 20% 증가했고, 매출액은 86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커졌다. 전국망과 다양한 차종을 보유하지 못한 영세업체들은 문을 닫았지만 대기업들은 기존 시장을 잠식하고 법인 및 개인용 장기렌터카 등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며 시장을 키웠다.

그럼에도 국내 등록 차량 가운데 렌터카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우리와 비슷한 렌터카 산업구조를 가진 일본(4%)의 절반 수준이라 렌터카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중고차시장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렌터카업체들은 렌터카로 사용한 차를 중고차시장에 내놓아 이익을 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상장사인 AJ렌터카는 영업이익의 70%가 중고차를 팔 때 발생한다. KT렌탈도 연간 1만6000대 가량의 중고차를 팔아 매년 300억원 안팎의 매각이익을 챙기고 있다.

결국 롯데는 다른 계열사와 시너지 없이도 KT렌탈 자체만으로 충분히 흑자를 낼 수 있다는 계산 하에 과감한 '베팅'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롯데가 KT렌탈의 고용안정을 약속한 것도 렌탈사업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나오기 힘든 결정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부분은 롯데의 전략변화다. 롯데는 지난 18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공유경제 관련 사업이 부각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눈에 보이며, 소유할 수 있는 자산에 관심을 뒀던 롯데가 눈으로 볼 수 없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 돈을 썼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공유경제란 생산된 제품을 필요한 만큼 빌려 여럿이 나눠 사용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IT기술과 접목돼 새롭게 급성장하는 분야다. 미국의 우버택시나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가 공유경제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KT렌탈은 지난 2013년 하루 단위가 아닌 30분 단위로 차를 빌려쓸 수 있는 카셰어링업체 '그린카'를 인수해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사업분야에 발을 내디뎠다.

◇ 위기 느낀 신동빈의 '승부수'

롯데의 변화 중심에는 신동빈 회장이 자리잡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고조되던 2012년 6월 "불확실한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라며 비상경영을 주문했던 신 회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선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껴서는 안된다"며 적극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롯데는 지난해 5조7000억원이던 투자액을 올해는 역대 최대인 7조5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롯데가 올들어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대기업에 주어진 8개 구역 중 4개 구역을 따내며 호텔신라를 누른데 이어 KT렌탈도 거머쥐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 것도 오너의 결단 없이는 이뤄지기 힘든 결정이다.

신 회장은 기존 사업모델로는 국경과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에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기록 중인 면세점 사업에선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관성처럼 나타났지만, 주력분야인 백화점과 마트 등 유통사업은 그렇지 않다.

 

신 회장이 지난해부터 부쩍 '옴니채널'을 강조하는 것도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상품 판매에 주력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아마존과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기업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고객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시공간의 제한없이 제공하는 것을 옴니채널 전략이라고 한다면, 백화점에서 렌터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어색한 조합은 아니다"라며 "소유보다는 렌탈의 가치가 커지는 저성장 국면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려고 이번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반색하는 주식시장, 주시하는 신평사

주식시장은 우호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설연휴가 끝나고 처음 열린 지난 23일 롯데손해보험 주가는 상한가로 치솟았고, 내리막 행진을 하던 롯데쇼핑 주가는 반등에 성공했다.

다만 인수를 앞두고 해결해야할 과제도 남아있다. 현재 KT렌탈은 전체매출의 10% 가량을 KT그룹 내부수요에 의존하고 있다. 통신 및 계측장비 등 일반렌탈의 경우 KT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50%가 넘는다.

롯데가 지난 18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보도자료를 낸지 30여분만에 수정자료를 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롯데는 "KT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사업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새로 추가했다.

 

롯데로선 인수를 마무리하더라도 KT와 지속적인 우호관계가 필수적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롯데의 인수 과정에서 KT렌탈의 사업기반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주요 관전포인트로 삼고 있다.

국제신평사인 무디스는 롯데쇼핑의 재무적 부담을 눈여겨봤다. KT렌탈 인수에서 롯데쇼핑과 호텔롯데가 분담할 금액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유완희 무디스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롯데쇼핑의 인수자금 부담이 상당하다면 신용등급에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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