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오전 방문한 충남 당진시 당진어시장 내부 모습. 신축건물임에도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
"거기라도 들어오면 장사가 좀 되려나. 봐. 텅 비었잖아. 젊은 사람들이 와야하는데…."
31일 오전 충남 당진시 읍내동 당진어시장에서 만난 60대의 시장상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된다는 푸념이었다. 당진어시장은 약 100억원을 들여 건물을 신축해 지난해 6월 새롭게 문을 연 곳이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금을 쏟아부었는데 신축 이후 오히려 손님이 뚝 끊겼다.
출입문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도록 건물을 폐쇄형으로 지은 게 화근이었다고 시장상인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장날인 이날도 어시장 안을 둘러보는 손님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정제의 당진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장사가 안되니 상인들은 새로 물건을 들여올 수 없고, 상품 종류가 몇개 안되니 손님이 다시 안오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 전통시장과 지방자치단체, 대형마트가 뜻을 모았다. 31일 당진어시장 앞에서 정제의 당진전통시장 상인회장, 김홍장 당진시장, 이갑수 이마트 대표이사가 시장활성화에 힘을 쏟기로 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
이렇게 쇠락해가는 전통시장에 이마트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이마트는 당진어시장 2층에 뛰어난 가성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노브랜드 전문점을 열었다. 지난 2010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대형유통업체가 전통시장 안에 그것도 같은 건물에 들어선 건 처음이다. 지난해 8월 당진시의 요청으로 입점을 검토한 이마트는 시장상인들과 협의를 거쳐 1년만에 문을 열었다.
1층 어시장을 지나 무빙워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활기찬 음악과 현대적인 분위기의 노브랜드 매장을 만날 수 있다. 이마트는 특히 20~30대 젊은 주부들이 자주 찾을 수 있도록 280㎡(85평) 규모의 장난감도서관을 마련했다. 이마트가 문을 연 전국 58개의 장난감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날도 장난감도서관은 어린아이와 함께 찾아온 젊은 엄마들로 북적였다. 돌이 지난 아이를 안고 이곳을 찾은 30대 주부는 "어시장은 그간 거의 안왔는데 아무래도 전보다는 자주 찾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 시장상인은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온 건 최근 몇년간 처음 본다"고 했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전통시장이 빠르게 몰락하면서 둘 사이에는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당진어시장 상인들도 처음엔 이마트 입점을 반대했다고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대형마트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트가 축수산물과 과일, 채소 등 상인들이 주로 취급해온 상품은 노브랜드 매장에서 빼기로 하면서 상인들도 반대를 접었다. 정제의 상인회장은 "어차피 이대로는 자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을 계기로 전통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걸 시민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당진어시장 2층에 위치한 노브랜드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손님들(사진위). 그 옆에는 이마트의 장난감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오른쪽 아래). 1층 어시장에 노브랜드와 상생을 알리는 휘장이 걸려있다(왼쪽 아래). |
대립에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협력관계로 바뀐 전통시장과 대형마트는 이제 상권활성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당진시는 전체 인구 17만명 중 구매력이 높은 30~40대 연령층 비중이 32%에 달한다. 이들을 끌어내야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도 생존할 수 있다.
이마트는 어시장과 공동마케팅을 진행하고, 상품구색 확대를 원하는 상인들에게는 최소 마진으로 이마트의 검증된 신선식품을 공급해주기로 했다. 매장운영이나 진열에 대한 노하우도 전수할 예정이다.
이갑수 이마트 대표는 "이번 상생스토어 모델이 널리 알려져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전통시장의 더 많은 '노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