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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한라산소주, '초록병' 디스한 속내

  • 2019.06.13(목) 16:41

제주도서 입지 좁아진 한라산소주, '투명병' 통할까

사진=한라산소주 제공

"저희는 녹색병을 사용하지 않고, 투명병으로 '정체성'을 살리려고 합니다. 제주의 깨끗함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청정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제주도에서 녹색병을 수거하지 않아 공병 이슈가 있습니다. 환경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이제 투명병만 수거하겠다는 의도도 있습니다."(현재웅 한라산소주 대표이사, 2019년 6월 5일 기자간담회)

예전에 제주도에선 식당에서 소주를 주문할 때 '파란 거' 내지는 '하얀 거'라고 하면 다 통했다고 합니다. 한라산소주가 제주 소주시장을 90%가량 점유하고 있을 때인데요. 하얀 거는 '한라산 오리지널'로 수도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21도 제품이고, 파란 거는 '한라산 올레'라는 17.5도 저도주 제품입니다.

하지만 이제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등 전국구 '파란 것'들이 제주도에 들어가면서부터입니다. 한라산소주의 지난해 제주시장 점유율은 54%가량인데요. 국내 소주 중 투명병(하얀 거)을 쓰는 건 한라산소주가 유일한 만큼 나머지는 죄다 경쟁사의 초록병(파란 거)이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결국 식당에서 '파란 거 주세요'라고 하면 조금 헷갈릴 수 있겠죠. 물론 제주도에 오래 사신 분이라면 단번에 알아듣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라산소주가 '파란 거'를 아예 없애기로 합니다. 최근 제품군을 리뉴얼했는데요. 기존 한라산 오리지널은 '한라산21'로 바꾸고, 한라산 올레의 경우 도수를 17도로 더 낮춰 '한라산17'로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두 제품 모두 투명병을 쓰기로 했습니다.

한라산소주가 모든 제품을 투명병으로 만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서울 등 수도권에서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계획인데, 이 지역에선 한라산소주라고 하면 '투명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그만큼 제주도의 깨끗함을 강조하면서 경쟁사들과 차별화도 꾀할 수 있는 겁니다.

사진=한라산소주 제공.

그런데 현재웅 한라산소주 대표는 이 설명을 하면서 한 가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얼마 전부터 제주도에서 '초록색병' 수거 문제가 이슈가 됐다는 겁니다. 일부 대기업들이 공병을 수거하지 않아 문제가 됐고, 결국 한라산소주가 생산한 병보다 더 많은 공병을 수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주장입니다. 현 대표는 그러면서 투명병만 쓰기로 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꼬집었습니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소주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제품은 전국 1위 브랜드인 참이슬인데요. 참이슬을 생산하는 하이트진로는 이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일단 공병을 수거하지 않으면 되려 손해인데 그럴 리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한라산소주를 제외한 국내 소주업체들은 초록색병을 공유해서 쓰고 있습니다. 다 쓴 공병을 모아 세척해 재활용하는 건데요. 만약 공병을 수거하지 않는다면 병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비용이 더 든다는 겁니다.

아울러 제품을 판매처에 차로 실어 나른 뒤에 빈차로 돌아오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주장합니다. 물류비 등을 고려하면 당연히 빈차보다는 공병을 실어 오는 게 비용 측면에서 이익이니까요.

양측 주장이 엇갈리니 어떤 게 진실인지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라산소주 역시 그동안 초록색이었음을 고려하면 수거하지 않은 공병이 과연 어느 업체 것인지 또 정말 수거하지 않은 게 맞는지 등을 하나하나 따지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웅 한라산 소주 대표이사가 지난 5일 서울 중구 무교통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나원식 기자)

다만 이번 논란이 시사하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한라산소주를 비롯해 지방 소주업체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마 제주도에선 과거와 달리 초록색 공병이 점점 늘고 있을 겁니다. 과거 한라산소주가 제주시장을 90%가량 점유하고 있을 때는 공병이 '하얀 거' 반 '파란 거' 반이었을 텐데요. 이제는 파란 공병이 적어도 70~80%를 차지할 겁니다. 그래서 '초록색 공병이 너무 늘고 있네, 제대로 수거하지 않는 게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는 한라산소주 입장에선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현 대표 역시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이 많이 내려온 탓에 지방 (주류) 회사들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제주도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한라산소주가 제품군을 모두 투명병으로 통일하고, 수도권을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마 그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업계에선 한라산소주의 적극적인 수도권 진출 전략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제주도에만 있을 때는 '희소성'이 있었는데 이제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 굳이 제주도에 가서 한라산소주만 찾을 이유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겁니다.

한라산소주 입장에선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무게 중심'을 잡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제주도에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동시에 수도권까지 공략하려는 한라산소주의 앞날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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