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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신동빈 회장이 빼든 칼의 의미

  • 2019.12.23(월) 10:26

대표 및 임원 대폭 물갈이…신동빈 회장 진두지휘
'통합 대표이사·젊은피' 앞세워 과거와 단절 선언

업계의 관심을 모았던 롯데그룹의 정기 인사가 마무리됐습니다. 롯데의 이번 인사는 '쇄신 인사'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만큼 인사의 폭과 내용이 종전과는 달랐습니다. 사실 이번 롯데 인사는 일정 부분 예상됐던 바입니다. 특히 유통부문의 경우 실적이 좋지 않았던 만큼 큰 폭의 물갈이가 예상됐었습니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유통부문뿐만 아니라, 그룹 전반에 대해 칼을 댔습니다. 롯데그룹 전체 임원의 약 20~25%가량이 새 인물로 바뀌었습니다. 업계의 예상보다 인사 폭이 무척 컸습니다. 그만큼 롯데그룹 내부에서 현재 상황을 무척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이번 인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챙긴 인사입니다. 신 회장은 그동안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활동이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으면서 불확실성을 제거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롯데그룹을 직접 진두지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 만큼 이번 인사에는 신 회장의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투영돼있습니다.

사실 신 회장은 이미 '쇄신 인사'에 대한 의중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경영 간담회 자리에서입니다. 그는 최측근인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의 입을 빌려 '비상경영'을 선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여느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각 계열사 대표 및 임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이번 인사는 자신의 생각을 현실화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더불어 롯데의 인사가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신 회장이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시그널을 강력히 보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런 만큼 롯데의 이번 인사는 단순히 '쇄신 인사'로만 보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롯데 인사에 담긴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조직 개편입니다. 롯데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통합 대표이사'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동안 롯데는 지주사 체제를 갖추면서 BU(Business Unit) 제도를 유지했습니다. 롯데그룹이 영위하는 사업군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눠 각 BU장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는 형식입니다.

하지만 이 BU제도는 외형상으로는 균형 잡힌 체계로 보이지만 실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것이 롯데 내외부의 평가입니다. 롯데의 BU제도는 업계에서도 대표적인 '옥상옥(屋上屋)'으로 꼽힙니다. 밑에서 의견이 올라와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데다 결재라인도 다양해 제대로 된 사업 추진이 어려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이는 기존 롯데가 가져왔던 기업문화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보수적이고 신중한 문화가 자리 잡은 롯데에 BU제도는 겉으로는 변화를 위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예전의 모습을 더욱 고착화시킨 제도였던 겁니다. BU장 아래 각 계열사 대표들이 존재하고 BU장과 이들의 생각이 다를 경우 크고 작은 균열이 생기면서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롯데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 사업 통합이나 최근 불거졌던 티몬 인수 건 등도 직간접적으로 롯데 특유의 옥상옥 구조 탓에 지지부진하거나 무산됐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롯데는 이미 업계에서도 상황 변화에 재빠르게 대처하기보다는 느릿느릿 천천히 움직이는 조직으로 유명합니다. 상황 대응과 판단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조직인 셈입니다. 급변하는 유통시장 환경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통합 대표이사'라는 카드를 꺼냈습니다. 강희태 유통 BU장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 김교현 롯데케미칼 통합 대표이사, 이영구 롯데칠성음료 통합 대표이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해당 부문의 '원 톱 대표이사'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사업 추진의 권한과 책임이 모두 주어졌습니다.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겁니다.

롯데그룹의 컨트롤 타워인 롯데지주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그동안 롯데지주는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운영됐습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호텔&서비스 BU장이던 송용덕 부회장을 롯데지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로써 롯데지주는 신 회장 아래 황각규, 송용덕 부회장 투톱 체제를 갖췄습니다. 두 부회장의 업무는 분화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 견제와 경쟁을 통한 시너지를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호텔&서비스 BU장에 이봉철 사장이 임명됐다는 점입니다. 이 사장은 신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롯데그룹의 대표적인 '곳간 지기'입니다. 이 사장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호텔롯데 상장입니다. 호텔롯데 상장은 신 회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입니다. 이 건을 재무통인 이 사장에게 일임했다는 것은 그만큼 호텔롯데 상장에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보입니다.

즉 신 회장은 롯데의 고질병이던 옥상옥 구조를 타개하고 통합 대표이사들에게 힘을 실어줘 각 부문별 현안들을 좀 더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입니다. 아울러 그룹의 가장 큰 현안이 호텔롯데 상장에도 최측근 재무통을 책임자로 앉혀 반드시 결과를 내겠다는 생각을 내비쳤습니다. 물론 이들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만큼 신 회장의 변화에 대한 의지는 강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번 롯데 인사에서 주요 계열사의 전면에 나선 인물들이 대부분 50대의 젊은 피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사장급이 맡았던 자리에 전무급을 앉히는 등 파격적인 인사도 선보였습니다. 신 회장은 '뉴 롯데'를 주창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를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 롯데의 움직임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 회장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전면에 배치해 그룹 전반에 자극을 주고 급변하는 경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을 주무기로 해 각 부문에서 성과를 내는 변화를 일으켜주기를 원한 겁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꽉 막혀있던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에게 더 큰 기회를 줘 그룹 전체에 활력을 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신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운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동안 벼리고 벼렸던 칼입니다. 역대급 인사라는 외형적인 면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에 더욱 눈길을 줘야 하는 것은 여기에 신 회장이 생각하는 '뉴 롯데'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신 회장이 진두지휘한 이번 인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신 회장의 '뉴 롯데'는 이제 진정한 출발선상에 섰습니다. 과거와 완전한 단절을 통해 그가 오랜 기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롯데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그려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신 회장은 이제 본격적으로 롯데의 수장으로서 전면에 나설 겁니다. 그가 빼든 날카로운 칼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내년 이맘때쯤이면 그 결과가 나올 겁니다. 함께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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