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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왕좌의 게임]③'신'이냐 '진'이냐…라면 진검승부

  • 2019.12.27(금) 15:23

'전성기 30년' 신라면…진라면의 끈질긴 '도전장'
농심, 해피라면·건면으로 반격…오뚜기는 '오!라면' 내놔

올해 식품업계에선 왕좌의 자리를 놓고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그간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부동의 1위 그리고 이를 따라잡으려는 2위의 '기싸움'은 두 업체 간 단순한 순위 경쟁을 넘어 관련 산업 전반에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소비자들에겐 또다른 흥밋거리를 선사했다. 과연 새해엔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을까. 제품별로 경쟁 판도를 전망해본다. [편집자]

지난 1963년 국내에 처음으로 라면이 출시된 뒤 어느덧 5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간 한국인들의 '입맛'은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안성탕면과 신라면으로 변해왔다. 

삼양식품의 삼양라면은 국내 최초 라면 브랜드다. 1963년 출시돼 1987년까지 오랜 기간 왕좌를 지켜오다가 안성탕면에 자리를 내줬다. 안성탕면은 출시 4년 만에 왕좌를 탈환하는 저력을 보여주며 2위 업체였던 농심을 국내 1위 라면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동생 격인 신라면에 1991년 다시 1위 자리를 물려줬다. 이후 국내 라면 시장은 29년간 '신라면의 시대', '농심의 시대'였다.

신라면을 앞세워 오랜 기간 1위 자리를 지켜온 농심의 위세는 대단했다. 왕년의 절대강자 삼양라면은 이른바 우지파동으로 추락한 뒤 오랜 기간 힘을 쓰지 못했다. 오뚜기나 팔도 등 경쟁사들 역시 신라면을 위협할 만한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신라면뿐 아니라 국내 라면 시장은 안성탕면과 너구리, 짜파게티 등 농심의 제품들이 꽉 잡고 있었다. 경쟁사 중에서는 삼양라면이 간신히 5위 권에 이름을 올려놓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농심의 시대는 영원할 것인가. 최근 오뚜기 진라면이 보여줬던 상승세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국내 라면시장에서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왔던 진라면은 지난해 신라면을 말 그대로 턱 밑까지 추격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올해 라면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리고 올해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농심과 오뚜기의 '진검 승부'가 펼쳐졌다.

◇ 농심, 해피라면·건면으로 '반격'

올해 초 농심이 '해피라면'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의 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은 사실 농심이 지난 1982년 출시했다가 1990년 단종했던 제품이다. 최근 뉴트로(Newtro·새로움과 복고의 합성어) 콘셉트의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흐름에 맞춰 내놨다는 게 농심 측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가격도 옛날 '느낌'으로 700원으로 책정했다.

업계에서는 농심의 '공식적인' 설명과 다르게 해피라면이 오뚜기 진라면을 견제하기 위한 제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 이유는 바로 가격 때문이다. 

이명근 기자

사실 진라면의 인기 비결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맛뿐만 아니라 가격에도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이었다. 신라면의 가격은 850원이다. 진라면은 750원으로 더 저렴하다. 오뚜기가 '가성비'를 앞세워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보다 더 저렴한 해피라면을 내놨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농심은 '건면'으로 신라면 제품군을 더욱 확대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신라면 건면'은 최근 건강을 중요시하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칼로리를 확 낮춘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들에게 '신라면'이라는 브랜드를 다시금 환기하는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신라면 건면은 전체 라면 시장 매출액 순위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농심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든 영향일까. 올해 신라면은 그간의 하락세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연도별 3분기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신라면의 점유율은 지난 2012년 21%가량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지다가 15%쯤에서 하락세가 멈췄다. 올해 3분기에는 다시 16%대로 올라서는 모습이다. 농심의 라면 점유율 역시 5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 오뚜기, 주춤했지만 끈질기게 추격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진라면의 추격도 '여기까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당장 2~3년간의 흐름만 보면 반짝 상승하던 기세가 금세 꺾였으니 더 이상 점유율을 높이기는 힘들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야를 더 넓혀보면 진라면의 '끈질긴'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오뚜기는 이름 그대로 '오뚝이처럼' 농심을 추격해왔다.

지난 2012년 3분기 진라면의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은 4.1%에 불과했다. 당시 신라면의 점유율은 21.4%에 달했다. 이후 진라면은 꾸준히 신라면을 추격하며 올해는 점유율 10%를 넘보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신라면의 경우 15%까지 떨어지며 이제 두 제품의 격차는 5% 포인트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특히 진라면 역시 신라면 못지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라면은 신라면(1986년)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1988년 출시된 뒤 끈질기게 존재감을 키워온 제품이다. 잠깐의 유행을 타고 반짝 인기를 끌었다가 사그라드는 제품들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실제로 소비자들의 진라면 선호도 역시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가장 좋아하는 라면 브랜드' 설문조사에서 진라면은 2위에 올랐다. 이 조사에서도 진라면의 '끈기'가 확인된다. 

진라면은 지난 2004년 선호도 조사에서는 3%의 지지를 받았는데, 2014년에는 9%로 뛰어올랐고, 올해는 14%까지 올랐다. 그간 2, 3위 자리를 지켰던 삼양라면과 안성탕면은 진라면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신라면의 경우 여전히 압도적인 선호도를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49%(2004년), 43%(2014년), 42%(2019년)로 다소 하락하는 추세다.   

◇ 소비자 입맛 다양화…승자는?

오뚜기는 지난 9월 개당 500원가량의 '오! 라면'을 새로 선보였다. 이로써 농심의 신라면-해피라면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에 대응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오! 라면'은 출시 20일 만에 500만개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제 과연 오뚜기가 새해에도 계속 농심을 추격할 수 있을지 지켜볼 차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뚜기는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갓뚜기'라고 불리는 등 좋은 기업 이미지를 바탕으로 점유율을 높여온 측면이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인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입맛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향후 농심 신라면과 오뚜기 진라면의 경쟁 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경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오뚜기의 약진은 강력한 할인 정책 이외에도 다양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기호 변화와 연관이 있다"며 "주요 브랜드의 양적인 성장으로 규모의 경제를 향유하던 식품 대기업들은 소비자의 빠른 기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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