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식품업계에선 왕좌의 자리를 놓고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그간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부동의 1위 그리고 이를 따라잡으려는 2위의 '기싸움'은 두 업체 간 단순한 순위 경쟁을 넘어 관련 산업 전반에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소비자들에겐 또 다른 흥밋거리를 선사했다. 과연 새해엔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을까. 제품별로 경쟁 판도를 전망해본다. [편집자]
김치는 우리 식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다. 연말이면 김장이 국민 이벤트가 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의 김치 사랑은 각별하다. 그랬던 김치에 최근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치는 당연히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것으로 알았던 소비자들에게 포장김치라는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단출해진 가구 수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포장김치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등장했다. 그러더니 이젠 김치를 담그는 것보다 구입해 먹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가 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 경쟁이 일어나는 법. 최근 국내 포장김치 시장에서는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혈투가 한창이다.
◇ 커지는 김치 시장
국내에 포장김치가 등장한 건 1980년대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전통음식인 김치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상품화를 추진한 것이 시초다. 초창기에는 발효음식인 김치의 특성상 포장이 쉽지 않았다. 숙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를 잡지 못해 포장재가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는 일이 많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게 '종가집'이다. 포장 안에 가스 흡수제를 넣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포장김치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김치를 돈을 주고 사서 먹는다는 것에 익숙지 않았다. 오랜 기간 김치는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것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사 먹는 김치는 낯설었다. 아울러 집집마다 양념이나 간의 세기, 김치에 넣는 속 재료 등이 달라 보편적인 김치 맛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탓에 초창기 포장김치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포장김치가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년 전부터다. 1, 2인 가구 증가로 포장김치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른바 '김포족(김장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기존 김치 소비량을 포장김치로 대체하려는 기성세대 및 가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배추김치뿐만 아니라 무김치 등 별미김치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국내 포장김치 매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 1412억원이던 국내 소매점 유통 포장김치 매출은 작년 2526억원으로 불과 4년 만에 78.9%나 급증했다. 업계에선 이런 추세가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포족'이 늘고 있어서다. 대상 종가집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김포족의 비율은 매년 50%를 상회하고 있다.
◇ '종가집' 문턱까지 간 '비비고'
국내 포장김치 1위 브랜드는 '종가집'이다. 원래 두산 소유였다. 하지만 두산이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지난 2006년 대상이 인수했다. 대상은 종가집 인수를 계기로 종합 식품업체로 도약을 시작했다. 특히 김치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국내 포장김치 시장을 이끌어왔다. 그 덕분에 대상은 지금까지 국내 포장김치 시장 1위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사실 CJ제일제당도 90년대에 'CJ햇김치'로 김치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그러다가 2006년 하선정종합식품을 인수해 '하선정 김치'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김치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종가집의 벽은 높았다. 종가집 김치는 오랫동안 김치에 특화된 기술과 연구개발로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CJ제일제당의 파상공세에도 종가집 김치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2016년 CJ제일제당이 '비비고 김치'를 선보이면서 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던 대상 종가집의 점유율이 갈수록 낮아졌다. 반면 CJ제일제당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갔다. 결국 작년 9월 CJ제일제당은 대상의 턱밑까지 쫓아갔다. 당시 대상 종가집 김치와 CJ제일제당 비비고 김치의 시장점유율 차이는 불과 2.6%포인트에 불과했다.
늘 대상 종가집에 밀렸던 CJ제일제당은 파격적인 마케팅을 도입하며 시장을 잠식해갔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김치 하나를 구입하면 하나를 더 주는 '1+1 전략'을 통해 대상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일정 부분 수익은 포기하는 대신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더불어 '비비고'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공격적인 마키팅을 펼쳤다. 그 결과 현재 국내 포장김치 시장은 대상 종가집과 CJ제일제당 비비고가 양분하고 있다.
◇ '골든 크로스'일어날까
대상 종가집 김치와 CJ제일제당 비비고 김치의 대결은 50여 년 전 대상 '미원'과 제일제당 '미풍'의 대결을 연상케 한다. 당시 국내 조미료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미원에 미풍이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미풍은 미원을 넘어설 수 없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도 자서전에서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세 가지는 자식농사와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CJ제일제당의 추격에 대상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대상도 CJ제일제당에 맞서 대대적인 할인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종가집 인수 이후 한 번도 왕좌에서 내려온 일이 없었던 만큼 사활을 걸고 1위 자리를 지켜야 했다. 대상과 CJ제일제당의 김치전쟁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지난해 배춧값이 오르면서 둘 사이 경쟁은 잠시 주춤한 상태다.
업계에선 한동안 이런 상태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CJ제일제당이 미국 냉동식품업체 쉬완스 인수 이후 재무부담에 힘겨워하고 있어 김치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현재 충북 음성공장에 이어 진천공장에도 김치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어 언제든 기회가 오면 다시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포장김치 시장은 그 규모가 커지는 만큼 대상과 CJ제일제당의 경쟁도 치열해질 "이라면서 "당분간 박빙의 승부는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누가 더 많은 비용을 들여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인데 과연 누가, 언제 먼저 치고 나올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