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품질만 좋다면 잘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마케팅은 항상 진화한다. 최신 유행이 곧바로 반영되는 유통시장은 더 그렇다.
최근 유통업계는 '캐릭터'와 '한정판', 그리고 '캘러버'를 활용한 마케팅이 한창이다. 이렇게 나온 제품은 라이선스 비용 등이 추가로 들어가 일반적인 제품보다 비싸기 마련이지만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최근 유통업계가 가장 집중하는 마케팅은 '캐릭터' 마케팅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포장 디자인 등에 반영해 인기를 끄는 제품이 많다.
가장 핫한 캐릭터는 역시 펭수다. KGC인삼공사의 정관장, 동원F&B의 참치통조림, 빙그레의 붕어싸만코·빵또아, 코카콜라의 미닛메이드 등이 펭수를 내세워 인기를 끌고 있다.
효과는 뚜렷하다. 펭수가 나온 정관장의 유튜브 동영상은 조회수가 2000만을 넘었으며, 펭수가 그려진 동원참치 선물세트는 참치제품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GS25는 곧 다가올 2월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펭수와 손을 잡고 관련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며, 그동안 캐릭터 빵으로 큰 재미를 보아온 삼립도 펭수빵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캐릭터를 선보인 업체들도 있다. 맘스터치는 자체 캐릭터인 '대맘이'(대장맘스터즈)를 내세워 SNS 마케팅을 펼치고 있고, 처갓집 양념치킨은 자체 캐릭터 '처돌이' 굿즈 사업을 본격화했다.
신년마다 되풀이되는 12간지 마케팅도 여전하다. 쥐의 해인 경자년(庚子年)을 맞아 유아복 업체들은 쥐 캐릭터를 활용한 세트상품을 구성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귀여운 쥐 모양의 베이커리 제품을 선보였으며, 신세계면세점은 쥐 모양이 그려진 골드바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그 밖에 이마트24와 투썸플레이스, 뚜레쥬르 등도 쥐 캐릭터를 활용한 신상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이 더 활발해진 이유는 캐릭터와 소비자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과거엔 TV나 영화에서, 어떤 스토리의 등장인물로만 캐릭터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 더 쉽게 캐릭터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비용이 낮아진 것도 이유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려면 큰돈이 든다. 싸이더스 애니메이션이 지난해 제작한 창작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만 봐도 제작비가 총 220억원에 달했다. 평가는 준수하지만 국내 매출은 61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다양해진 플랫폼을 활용하면 캐릭터를 만들고 유통하는데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EBS 펭수의 경우 제작비가 수천만원대로 알려졌다.
또 각종 메신저 서비스의 이모티콘이나 인터넷 게시글 '짤방' 등으로 캐릭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캐릭터 자체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에 대한 구매욕구가 과거보다 높다"라고 설명했다.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함을 찾는 소비자들은 '한정판' 마케팅에 열광한다. 선착순으로 살 수 있는 한정판 제품을 사려고 줄을 마다하지 않는 소비자가 많다.
최근 오비맥주는 '카스 별자리 에디션' 한정판을 선보였다. 이 패키지는 355㎖ 카스 캔 제품에 4개 야광 색상을 활용해 12개 별자리 이미지를 인쇄해 넣었다. 제품 하단에는 스마트폰으로 신년 별자리 운세를 확인할 수 있는 QR코드도 새겼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 아워글래스는 '컨페션 립스틱 듀오 밸런타인데이 2020' 한정판을 내놨으며,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도 최근 '2020 발렌타인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캐릭터'와 '한정판'이 만나 대박이 난 사례도 있다. 지난해 말 이랜드의 SPA브랜드 스파오에서 출시한 펭수 티셔츠와 수면바지 11종, 총 500벌이 발매 3시간 만에 완판됐다. 완판과 동시에 중고 시장에 등장해 발매 가격보다 두 배가량 비싼 가격에 재판매되기도 했다.
한정판 마케팅의 다른 이름은 '헝거' 마케팅이다. 한정된 물량만을 공급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크게 자극하는 방식이다. "다 팔리고 딱 한 벌 남았어요"라는 옷가게 직원의 판매용 멘트가 헝거 마케팅의 대표적인 예다.
한정판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여러 가지다. 수량을 한정하거나 살 수 있는 기간을 한정하는 방식이 많이 쓰인다. 두 방법을 다 사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살 수 있는 매장을 제한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스타벅스의 각 도시별 텀블러가 이런 방식으로 판매된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가격을 크게 올리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수량과 기간에는 제한이 없지만 가격 때문에 아무나 살 수 없고, 아무나 가질 수 없게 만들어 결국 제품을 팔리게 한다.
최근 유통업계에선 한 '컬래버' 마케팅이 화제였다. 주인공은 소주팩 모양의 백팩을 선보인 무신사다. 무신사는 지난해 11월 400개 한정으로 참이슬 소주팩 모양의 백팩을 선보였다.
모두 팔리는 데는 6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초 가격은 4만9000원에 불과했지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1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재판매되기도 했다.
컬래버는 전통적인 마케팅 방법의 하나다. 하지만 최근 컬래버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다. 소주와 가방처럼 접점이 없다고 생각한 상품이 만나 컬래버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애경그룹은 최근 삼양식품과 컬래버를 통해 불닭볶음면의 캐릭터 '호치'를 활용한 치약을 내놓았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불닭볶음면의 이미지를 치약에 활용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었지만 인터넷 등에서 큰 화제가 됐다. 치약색도 불닭볶음면처럼 진한 붉은색이지만 실제 맛은 그다지 맵지 않게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스무디킹과 광동제약이 컬래버를 진행해 쌍화스무디를 선보였으며, 탐앤탐스는 CU와 컬래버를 통해 테이크아웃 컵에 떡볶이를 넣어 팔았다.
풀무원은 프로야구팀 한화이글스와 함께 '포기하지 마라탕면'을 내놓아 한 달 만에 100만봉지를 완판시키기도 했고,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와 남성 의류 쇼핑몰 '4XR'의 컬래버로 '곰표 패딩', '곰자수 맨투맨' 등이 선보이기도 했다.
한 유통회사 관계자는 "각자 널리 알려져 새로울 것이 없지만, 뜻밖의 조합을 통해 소비자들의 주목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며 "특히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큰 반응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