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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샤넬 구매심리 보니…보복 소비? 내 가치 표현?

  • 2021.04.20(화) 10:49

한국 세계 7위 규모로 성장…2030 MZ세대 소비 두각
업계 "코로나 보복소비 vs 학계 "미래보다 현재가치에 집중"

국내 명품 시장이 성장을 이어가자 사회적 분노가 명품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지난해 국내 명품 소비시장 규모가 세계 7위로 한 단계 올랐다. 2030 MZ세대가 시장 성장을 견인했다.

이를 두고 코로나19로 평소 쓰지 못한 휴가비 등 여유자금을 명품 구입에 썼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단순 '보복심리의 소비'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낳은 가치소비 행태라는 의견이다. 명품 소비성향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한국 명품시장 규모, 독일 넘어 7위로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명품 시장 규모는 2869억 달러(약 320조 8690억 원)였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전년 대비 15.3% 줄었다.

국내 시장의 추이는 글로벌과 달랐다. 지난해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3대 명품 브랜드의 매출은 2조 4000억 원에 달했다. 전체 시장 규모는 125억 420만 달러(약 14조 9960억 원)로 전년 대비 0.1%만 줄었다. 덕분에 한국이 독일을 제치고 글로벌 7위에 오르며, 실질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명품 시장은 MZ세대가 이끌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대는 지난해 명품 매출의 10.8%를 점유했다. 30대는 38.4%였다. 2030세대가 49.2%로 절반을 차지했다. 롯데백화점에서도 2030 소비자의 명품 매출 비중이 46%에 달했다. 온라인에서는 이들의 비중이 더 크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명품 구매자 62.5%가 2030세대였다.

지난해 국내 명품 시장은 글로벌 7위를 기록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이를 두고 업계와 학계의 시각이 다르게 나타난다. 

업계에서는 MZ세대의 보복소비가 명품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에 휴가비 등을 명품에 투자했다는 설명이다. 중고거래 시장의 활성화도 '명품 전성시대'의 이유로 거론된다. 명품은 희소성 등의 이유로 감가상각이 크지 않다. 실제로 롤렉스, 샤넬 브랜드의 일부 제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오르기도 한다. 일단 명품을 구입하고 상황에 따라 되팔더라도 손해보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배경은 명품 브랜드들의 줄이은 가격 인상에도 시장이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샤넬은 지난해 5월과 10월 연이어 가격을 인상했다. 루이비통, 셀린느 등 브랜드들도 가격을 올렸다. 하지만 '중고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도 안정적이니 지금 사서 쓰다 팔아도 이득'이라는 심리가 자리잡았다. 결국 매 번 가격을 인상할 때마다 매장에 줄을 서는 '오픈런'이 발생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집콕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자기에 투자하는 소비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며 "만족을 중시하는 '가심비' 소비도 명품 소비 증가에 영향을 끼쳤고, 다시 팔면 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명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소비 아닌 '사회구조 불만에 따른 가치표현'

하지만 학계에서는 MZ세대의 명품 소비를 보복소비 등 단순 시장 트렌드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통계청의 '2017년 국민이전계정 결과'에 따르면 노동소득은 45세에 정점을 찍는다. 0세부터 27세까지는 소비가 노동소득보다 많다.

즉 2030 세대의 명품소비 이면을 보면 소득이 가장 많은 세대가 아닌 적자 또는 성장기에 있는 세대가 명품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게 학계의 지적이다.

MZ세대는 결혼, 자가 마련, 출산 등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주요 대기업이 공개채용을 없애는 등 취업 시장부터 녹록치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매출액 500대 기업의 신규 채용 계획 조사'에 따르면 17.3%의 기업이 상반기 채용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취업을 하더라도 부동산 가격은 월급을 모아 도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랐다. 미래를 보고 저축하기에는 금리가 낮다.

국내 주요 명품 브랜드 매출 변동 추이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MZ세대 내에는 이 같은 현실적 문제로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N포세대'의 비율도 높다. 지난해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 미혼 직장인·구직자 1600명에게 결혼과 출산 의향을 조사한 결과, 53.9%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주요 이유로는 '소득이 적어서(28.1%)', 자녀에게 충분히 잘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18.6%)' 등이 꼽혔다.

이에 대한 좌절감을 명품 등 고가 제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다는게 학계의 분석이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단국대 교수)은 "MZ세대는 사회 진출 초기 계층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에 있지만, 현재 사회적 상황은 이들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명품 소비 등에 집중하는 모습은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해 만족도를 높이려 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시장 성장을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명예·노력 등 사회적 가치가 무너지는 것이 명품 시장 성장을 불러왔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에 민감한 MZ세대는 거듭되는 권력형 스캔들로 사회 구조에 대한 환멸을 표출한다.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구는 옅어진다. 유튜브 인플루언서 등 일부 셀럽이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것을 보면서 노력의 허무감과 이들에 대한 동경이 나타난다. 이런 심리상태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존중받기 위해 명품을 구매한다는 이야기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권력, 명예 등 기존 사회를 지탱해 오던 가치에 비해 금전이 갖는 힘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다"며 "금전은 타인에게 나타내 보여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재화이며, 이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상품이 명품이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명품을 구매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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