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모처럼 함께 웃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각기 다른 전략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다. 아모레퍼시픽은 '디지털 전환', LG생활건강은 '해외시장'에 방점을 찍었다. 앞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2010년대 초에도 서로 다른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 경쟁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안정성에서는 LG생활건강, 잠재력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우위에 있다고 보고 있다.
◇ 아모레퍼시픽, 1분기만에 '화장품 1위 탈환'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 3875억 원, 영업이익 1977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8.5%, 영업이익은 191.1% 늘었다. 이는 증권사 영업이익 컨센서스 1466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주력 계열사 아모레퍼시픽은 같은 기간 매출 1조 2528억 원, 영업이익 1762억 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대비 10.8%, 189.2% 성장했다.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 주요 자회사들은 채널 효율화에 성공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화장품 사업 전체 매출은 1조 2954억 원이었다. LG생활건강에게 내줬던 화장품 1위 자리를 1분기만에 되찾았다. 다만 데일리뷰티(바디·헤어부문)까지 합치면 여전히 LG생활건강이 1위다.
LG생활건강도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성장을 이어갔다. LG생활건강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7% 증가한 2조 367억 원, 영업이익은 11% 성장한 3706억 원이었다. 1분기 화장품 사업은 매출 1조 1585억 원, 영업이익 2542억 원을 기록했다.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 14.8% 늘었다. 생활용품, 식음료 사업도 견조한 실적을 내며 힘을 보탰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모두 해외 시장의 회복이 큰 힘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의 1분기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20% 이상 늘었다. 특히 중국 시장 회복이 주효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프리미엄 브랜드 '설화수'는 지난 3월 중국 '3·8 부녀절' 행사에서 역대 최대 수준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LG생활건강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중국 시장 지배력을 키우며 화장품 사업을 이끌었다. LG생활건강의 럭셔리 브랜드 '후'의 1분기 중국 시장 내 매출액은 전년 대비 31% 성장했다. '로시크숨마', '더퍼스트' 등 브랜드도 중국 시장 매출이 지난해 대비 각각 40%, 64% 올랐다. '더페이스샵'은 클린뷰티 콘셉트를 무기로 온라인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 아모레퍼시픽 '디지털 전환'·LG생활건강 '해외'에 방점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1분기 실적 호조를 발판 삼아 올 한 해 성장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전략은 다소 다르다. 아모레퍼시픽은 사업 전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을 공격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반면 LG생활건강은 럭셔리 브랜드에 힘을 줘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해외 시장을 키우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2010년대 초반에도 각기 상반된 전략을 바탕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국내‧외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빠르게 확대했다. 중저가 브랜드 강화에 집중했다. 대중들에게 더 많이 판매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사드 사태 이후 중국 시장이 얼어붙자 패착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국내 로드숍 시장까지 얼어붙으며 상황이 더 악화됐다. 아모레퍼시픽이 디지털 전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LG생활건강은 온‧오프라인을 함께 공략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인지도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매장을 크게 늘리지 않았다. 덕분에 사드 사태 직후 중국 더페이스샵 매장 130개를 즉시 철수하는 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온라인 시장에서는 '후', '숨', '오휘' 등 브랜드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LG생활건강 입장에서는 사업 구조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LG생활건강은 지난해 화장품 사업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4% 늘어났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이 66.6% 줄어든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결국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내내 오프라인 효율화 등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미국 더마 화장품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사업권을 인수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반격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글로벌 이커머스 디비전' 등 부서를 신설했다. 디지털 전환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네이버‧쿠팡‧알리바바‧아마존 등 국내‧외 이커머스 플랫폼과 전략적으로 협업해 디지털 사업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다양한 가격대 브랜드의 높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유통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전략적 결단은 '턴어라운드'로 이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 1분기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했다. 설화수가 라이브커머스에서 1시간 만에 1억 6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구체적 성과도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의 침체를 상쇄하는 수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 한 해 남은 기간에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장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신성장동력을 해외 시장에서 찾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2019년 인수한 미국의 '뉴에이본'을 통해 북미 시장을 직접 공략한다. 뉴에이본은 세계 최대 화장품 직접 판매사 '에이본'의 본사 역할을 하던 회사다. IT‧구매‧물류‧영업 등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온‧오프라인 양면에서 현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지난해 인수한 피지오겔은 고급 브랜드로 육성해 프리미엄 라인업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안정성은 LG생활건강, 잠재력 측면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은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중심인 만큼 위기 관리에도 효율적이고 일정 수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며 "아모레퍼시픽은 프리미엄은 물론 온라인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중‧저가형 브랜드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온라인 전환에 성공한다면 고속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