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1마리 2만원 돌파·튀김용 기름값 인상·실적 부진 등 잇단 논란에 휩싸인 치킨업계가 연말 최대 대목인 월드컵을 통해 반등을 노리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대한민국의 경기가 오후 10~12시에 몰려 있어 '치킨 대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치킨업계는 월드컵에 맞춰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해 실적과 '국민 야식' 이미지를 동시에 회복한다는 계획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22년 치킨업계는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 말 업계 1, 2위인 교촌에프앤비와 bhc가 잇따라 가격을 인상하면서 올해는 '2만원 치킨 원년'이 됐다. 당시 치킨 값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던 제너시스BBQ는 올 초 윤홍근 회장의 "치킨값 3만원"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고 4월 가격 인상을 선언했다.
치킨업계 '빅 3'가 치킨 값을 잇따라 올리면서 대형마트와의 전쟁도 다시 시작됐다. 홈플러스가 1마리 6990원짜리 '당당치킨'을 선보이면서다. 치킨업계는 "남는 게 없는, 미끼상품이라 가능한 가격"이라며 폄하했지만 소비자들은 긴 줄과 품절 행진으로 응답했다.
bhc는 튀김용 식용유 가격 인상으로 한 차례 더 홍역을 치렀다. 올해 튀김용 해바라기씨유의 가맹점 공급가를 60%나 올리면서 가맹점주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인상률을 40%로 조정하고 다시 3.7%를 내렸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교촌에프앤비는 지난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이 3887억원, 영업이익이 126억원에 그쳤다. 매출은 2.8% 늘어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60% 넘게 빠졌다. 3분기만 보면 매출이 4.2% 줄었고 영업이익은 79% 감소했다. 상장 이후 첫 외형 감소다. 다른 대형 치킨 브랜드들 역시 성장률이 크게 꺾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각 브랜드 대표 제품의 중량과 성분을 공개하며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다. 특히 중량이 가장 적게 나왔던 교촌에프앤비가 표적이 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교촌 오리지널의 실중량(뼈 제외)은 625g으로 네네치킨의 쇼킹핫치킨(1234g)의 절반에 그쳤다. 교촌 측은 "똑같은 10호 닭이지만 조리법의 차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비자들은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월드컵 효과'로 논란 끊어낸다
치킨업계는 지난 20일 개막한 월드컵이 잇단 논란을 끊어내 주길 바라고 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은 치킨업계의 가장 큰 대목이다. 지난 2018년에도 치킨업계는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1차전이었던 6월 18일 스웨덴전 당일 bhc의 매출은 전주 대비 2배 이상 급증했고 2차전인 멕시코전, 3차전인 독일전에서도 매출이 배 가까이 증가했다. BBQ도 1차전 직후 매출이 전주 대비 110% 뛰었고 교촌치킨도 60% 증가했다.
대표팀 에이스인 손흥민의 출전 여부도 '치킨 대목'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당초 손흥민은 리그 경기 중 입은 안면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최근 1차전 출전을 강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TV 앞으로 모이는 축구팬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 일정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오는 24일 오후 10시, 28일 오후 10시, 12월 3일 자정에 경기를 갖는다. 퇴근 후 늦은 저녁식사를 하거나 저녁식사 후 '치맥'을 즐기기 적당한 시간대다. 매출 성장 효과를 봤던 러시아 월드컵 때도 늦은 저녁시간대에 집중된 경기 시간이 큰 영향을 미쳤다.
거리응원이 예년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도 '집콕 치맥'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요소다. 붉은 악마 응원단과 몇몇 지자체가 거리 응원을 기획하고 있지만 이태원 참사의 영향으로 규모는 대폭 줄어들었다. 그만큼 많은 축구팬들이 집에서 TV를 통해 월드컵을 시청한다는 의미다.
주요 치킨 브랜드들은 월드컵에 맞춰 '손님 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주요 브랜드들은 경기가 밤 늦게 열리는 만큼 운영시간도 새벽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신제품·프로모션도 잇따른다. BBQ는 일찌감치 신제품 '자메이카 소떡만나 치킨'을 출시했다. 치킨업계에서 비수기인 11월에 대형 신제품을 내놓는 건 이례적이다. bhc는 치킨과 테라 2병으로 구성된 치맥 세트를 선보였다.
"월드컵=흥행수표 아니다"
낙관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배달이 가능한 식품군이 늘어나며 '배달음식=치킨'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배달의민족이 발표한 연령별 키워드 트렌드에 따르면 치킨은 20대에서만 3위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5위권 내에도 들지 못했다.
치킨업계가 올해 '고가 논란'을 겪으면서 많은 치킨 수요가 대형마트의 저가 치킨이나 편의점 치킨 등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롯데마트는 24일 대한민국의 첫 경기에 맞춰 치킨과 닭강정, 맥주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편의점업계도 대한민국 경기 당일 맥주 할인 행사를 펼치며 '집관족'을 유인하고 있다.
한 치킨업계 관계자는 "배달 야식 하면 치킨을 생각하던 것도 코로나 이전에나 통하던 말"이라며 "월드컵이 시작되면 매출이 오르긴 하겠지만 이전처럼 극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