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롯데면세점 본점. 캐리어를 끌고 있는 중국인 수십 명이 바쁘게 롯데면세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은 한국에서 쇼핑과 관광을 즐기기 위해 방한한 '유커'다. 이미 매장에는 마스크팩과 홍삼을 구매하는 유커들로 넘쳐났다. 인근 명동 거리에는 이들을 태운 버스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롯데면세점이 유커의 귀환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전 당시 고배를 마시며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최근 유커로 반전을 맞은 모양새다. 오히려 공항 면세점 임대료 부담이 적은 점을 이용해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앞으로도 시내 면세점에 본격적으로 힘을 준다는 계획이다.
귀한 손님 '유커' 돌아왔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조치를 해제했다. 이로써 7년 여 만에 한국행 단체여행 금지 조치가 풀렸다. 이 때문에 유커가 다시 귀환할 것이란 업계의 기대가 높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54만6393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7만5191명에 비해 7배 이상 증가했다.
유커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뜻한다. 캐리어를 끌고 각 시내 면세점을 도는 일명 '싹쓸이 쇼핑'으로 유명했다. 한국 면세점의 큰손이었다. 그만큼 개별 관광객보다 객단가가 3배 가량 훨씬 높다. 사드 보복 조치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없었던 2016년 당시만 해도 유커가 면세점 업계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약 70%에 육박했다.
이 때문에 현재 업계에서는 유커 유치전이 한창이다. 중국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고 통역과 시설 등 관련 인프라 정비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내 면세점들이 여행사에 수수료를 주고 한국 단체관광 상품에 자사 면세점 방문을 권유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유커의 방한이 본격화되면 실적 개선세가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들어오기 시작한 지난달 23일부터 30일 중국인 매출은 직전 일주일(16~22일) 대비 약 16% 늘어났다. 지난 7월 중국인 매출이 6월 대비 약 13%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이달 중국 중추절 등 연휴를 기점으로 점차 중국인 매출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국공 탈락 오히려 호재?
특히 앞으로 롯데면세점의 수혜가 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 탈락이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유커는 공항면세점보다 시내면세점을 돌면서 쇼핑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명동과 강남 등 서울 시내에서 관광과 쇼핑을 동시에 마친다. 이 때문에 유커들은 공항면세점을 잘 이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천국제공항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강점이다. 앞으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들은 PAX(국제선 여객수)에 따라 임대료를 내야한다. 여객수가 앞으로 코로나19 이전의 60%를 회복하면 과거 정상 임대료가 적용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공항면세점은 적자를 볼 수도 있다. 여객수 회복이 곧 면세 쇼핑 증가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서다. 앞서 유커가 대표적 사례다.
반면 롯데면세점은 이 여력을 바탕으로 시내점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경쟁사보다 공격적인 할인과 프로모션을 내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명동에 본점이 입지해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롯데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전에서 의도적으로 낮은 금액을 써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올해 목표를 시내면세점 역량 강화로 잡았다. 롯데면세점은 현재 '공항보다 더 큰 롯데면세권에서 산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유커를 겨냥한 혜택도 늘리는 중이다. 오는 중국 중추절과 국경절에 방한한 중국인 고객을 타깃으로 다음달 1일부터 유명 브랜드 시즌오프 세일 행사를 연다. 아울러 내년에는 잠실 월드타워점에 업계 최대 규모의 주류전문관을 조성할 예정이다.
해외 사업 확장에도 힘을 주고 있다. 지난해 5월 호주 시드니시내점과 11월 베트남 다낭시내점을 연이어 개점했고, 최근에는 호주 멜버른공항점이 문을 열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시내면세점과 해외면세점 전략을 통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빈 자리를 극복해낸다는 계획"이라며 "실적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