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예년보다 이른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에 소비침체가 극심해지고 있는 데다, 쿠팡 등 신흥 강자의 등장으로 업체들의 경영 위기감이 높아진 탓이다. 양 그룹 모두 "예정된 것 없다"는 입장이지만 세간에서는 이들의 '빠른 변화'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9월에 벌써 정기 인사를?
1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이르면 내달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롯데그룹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에 그룹 전체 인사를 진행했다. 예전보다 한 달가량 인사가 빠른 셈이다. 특히 유통부문에서 김상현 롯데쇼핑 부회장, 정준호 롯데쇼핑 대표 등이 내년 3월 사내이사 임기 종료를 앞둔 상황이다. 2021년 롯데쇼핑에 합류해 임기 3년을 보장받은 롯데온 나영호 대표도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헤드쿼터(HQ) 체제에 변화를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이완신 전 호텔군 총괄대표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호텔HQ 조직이 축소된 탓이다. 이 때문에 전반적인 HQ체제 회의론이 내부에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그룹은 지난 2021년 기존 유닛(BU·Business Unit) 체제를 대신해 HQ를 도입했다.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 인사와 재무 등 HQ 수장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었다.
신세계그룹도 빠른 인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가오는 국정감사 등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이달 중 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신세계는 당초부터 이른 시기에 인사를 진행해 왔다. 이마트 부문만 떼어내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10월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해왔다. 9월 인사에 나선다면 이보다도 더 빨라지는 셈이다.
가장 큰 관심은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의 재연임 여부다. 최근 신세계그룹은 이마트를 중심으로 굵직한 M&A(인수합병)에 나서왔다.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 등에 거금을 투자해 시너지를 모색했지만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SSG닷컴은 2021년과 2022년 영업손실이 각각 전년보다 130.1%, 3.0% 증가했다. 조기 인사와 관련 신세계 관계자는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도 전달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사썰' 피어오른 속사정은
이처럼 유통 공룡들의 빠른 인사 이야기는 그만큼 업황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올해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이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때문에 재계 순위 5위 자리를 포스코그룹에 내주고 계열사 신용등급마저 하향 조정됐다. 롯데쇼핑도 좋은 상황이 아니다. 롯데쇼핑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7조 1840억원)은 전년 대비 6.4% 감소하며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롯데그룹이 부진 타개를 위해 '빠른 쇄신'을 꺼내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2021년 말 인사에서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등 쇄신에 방점을 찍어오고 있다. 당시 유통 부문을 총괄하는 롯데쇼핑 신임 대표이사에 처음으로 '비(非)롯데맨'인 김상현 부회장을 앉혔다. 이외에도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백화점 대표와 놀부 출신 안세진 호텔롯데 대표 등도 적극 영입했다.
신세계도 빠른 인사에 대한 필요성이 큰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그룹 온·오프라인 통합 멤버십인 신세계유니버스 등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다. 앞서 신세계는 2021년부터 5차례의 대규모 인수·합병(M&A)를 진행해 왔다. 기존 사업과 신사업 간 시너지를 하루빨리 내보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빠른 인사는 그만큼 조직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빠르게 내년 사업을 준비하겠다는 의도가 큰 셈이다.
쿠팡 등 신흥 강자의 등장도 빠른 인사의 가능성을 높인다. 쿠팡은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 첫 연간 흑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로켓배송부터 신사업인 음식 배달, OTT까지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롯데 신세계의 대응 속도는 항상 늦다는 지적이 많았다. '쿠·이마·롯'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지 오래다. 올드보이들의 빠른 쇄신이 점쳐지는 부분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소비침체가 장기화하고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마저 어렵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며 "유통사들의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그룹의 빠른 인사 이야기는 그만큼 내부서도 고민이 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변화의 폭도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