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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 1위' 농심, '초코파이' 만들지 않는 이유

  • 2023.12.31(일) 13:00

[생활의 발견]'굽는' 파이'보다 '튀기는' 스낵에 강점
라면·스낵 모두 시장 점유율 고공행진 중
라면과 스낵 제조법 유사…파이류 신규 투자 불필요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여러분에게 농심은 어떤 회사인가요. 저는 라면도 라면이지만 '과자 회사'로 더 각인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성인인 지금까지 농심 과자를 주로 먹고 있거든요. '새우깡'부터 최근 '먹태깡'까지 간식, 술 안주으로 즐겨 찾습니다. 이외에도 농심은 '바나나킥', '포테토칩', '양파링' 등 수많은 과자 스테디셀러가 있습니다. '인디안밥', '조청유과'도 있네요. 

이런 농심을 볼 때면 항상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파이'로 불리는 비스킷·파이류와 같은 '박스 과자'는 왜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주요 과자 업체를 보면 대표 '파이' 제품은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당장 오리온만 봐도 초코파이가 주력 상품입니다. 크라운제과와 롯데웰푸드도 각각 '빅파이', '엄마손파이'라는 시그니처 박스 과자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농심은 봉지 과자에만 집중돼있죠.

물론 농심도 과자에 '진심'입니다. 농심은 국내 스낵 과자 시장 1위입니다. 실제로 농심은 올해 상반기 스낵 매출액 2341억원을 거둬 점유율 23.5%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농심 연 매출의 약 15%는 과자가 담당합니다. 이처럼 과자는 농심의 주요 매출원입니다. 이쯤이면 여타 경쟁사처럼 과자 종류를 비스킷, 파이류로 늘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입니다. '농심 초코파이', '농심 새우깡 비스킷'처럼 말이죠. 

국내 스낵과자 제조사 점유율 / 그래픽=비즈워치

궁금함에 직접 농심에 물었습니다. 사실 농심이 박스 과자류 손을 대지 않고 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스낵 과자와 비스킷·파이류 과자의 차이에서 생긴 결과입니다. 스낵류와 파이류 모두 똑같이 밀가루와 설탕이 원료지만 제조법이 확연히 다릅니다. 스낵은 '튀긴다'는 개념인 반면, 비스킷·파이류는 '굽는다'는 점입니다.

농심은 애초 라면 사업을 위해 탄생한 기업입니다. 그렇다보니 모든 제조기술과 설비가 '튀기는' 쪽에 특화돼있습니다. 라면과 스낵류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생산라인부터 포장까지 등 많은 것을 호환, 공유할 수 있습니다. 농심의 대표 스낵인 새우깡도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반면 비스킷과 파이류는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상품 포장과 개발까지 인력은 물론 관련 설비도 추가해야 합니다. 아예 제조 라인을 새로 깔아야 할 겁니다. 

기존 사업들이 순항하고 있는 것도 파이류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농심 입장에서는 라면과 스낵 과자가 잘 나가는 상황에서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농심의 '깡' 시리즈는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핵심인 라면 사업은 이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불확실한 영역에 투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보다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특히 박스형 과자에 대한 수요도 많지 않습니다. 카페와 디저트 전문점 등이 늘어나면서 먹을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비스킷, 파이류 과자는 과거 고급 과자를 쉽게 먹을 수 없던 시절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초코케이크를 파는 지금, 박스 과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마 농심의 생각일 겁니다. 실제로 현재 과자 시장 트렌드를 이끄는 제품들을 보면 대부분 봉지형 스낵들입니다. 

농심 먹태깡 / 사진=한전진 기자 noretreat@

주 소비층인 아동들의 수도 줄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초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내년에는 합계 출산율이 0.6명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자의 주 소비층이 붕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과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망이 불투명한 곳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를 감내해야 합니다.

사실 최근 과자 회사들의 고민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수가 줄어가는 상황에 과자 장사만으로는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탈(脫) 제과'를 위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리온은 바이오 등에서 새 먹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롯데제과도 지난해 롯데푸드와 합병하며 종합식품기업 도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농심도 라면과 과자 제품을 넘어 '대체육'과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신사업으로 육성 중입니다. 

농심 관계자는 "이미 국내 라면·스낵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과 카테고리의 사업 확장은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며 "대신 우수한 품질을 갖춘 라면과 스낵을 글로벌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앞으로도 농심이 잘 하는 영역인 라면과 스낵 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농심엔 왜 초코파이가 없을까'라는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의외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 많아서 내심 놀랐습니다. 이제 '농심 초코파이'는 저만의 상상 속 과자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다음 주면 2024년 새해가 밝아옵니다. 새해 복 많으시고 다음에도 더 재미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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