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요즘 라면 시장의 대세는 '매운 맛'입니다. 언제적 이야기냐구요? 10년 전 불닭볶음면의 등장 이후 라면이 점점 더 매워지기는 했지만, 최근의 매운 맛 트렌드는 또 한 차원 달라졌습니다. 매운 맛 신제품이 나오는 건 물론, 기존 라면들도 더 매워지고 '3배 매운' 등의 수식어를 단 한정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최근 나온 매운 라면들만 살펴봐도 농심이 '신라면 더 레드'와 '3배 매운 배홍동쫄쫄면 챌린지 에디션'을 내놨죠. 팔도 역시 '킹뚜껑 마라맛'을 출시해 한정판 70만개를 순식간에 팔아치운 후 정식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아직 안 드셔보신 분들은 이 제품들이 얼마나 매운 지 감이 안 오실 수 있을 겁니다. 매운 라면의 대표 격인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스코빌 지수가 4404SHU라고 합니다. 신라면 더 레드의 경우 7500SHU입니다. 불닭볶음면보다 50% 이상 높습니다. 킹뚜껑 마라맛은 1만2000SHU로 불닭볶음면의 3배입니다.
그런데 이런 매운 라면들을 먹다 보면 묘하게 이질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느 라면은 스코빌 지수에 비해 덜 매운 느낌이고요. 어떤 라면은 숫자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른들 말처럼 '맛있게 매운 맛'과 '그냥 맵기만 한 맛'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매운 맛과 스코빌 지수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스코빌 지수
우리가 흔히 매운 맛을 숫자로 표시할 때 스코빌 지수를 사용합니다. 이 스코빌 지수는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Wilbur Scoville)'이 만든 지수인데요. 고추나 후추 등에 들어 있는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과 피페린 등의 농도를 측정한 겁니다.
처음엔 생각보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지수를 측정했습니다. 청양고추의 스코빌 지수를 측정하려면 청양고추에서 고추기름을 짠 후 설탕물을 얼마나 넣어야 전혀 맵지 않게 희석되는지 보고 물의 양을 잰 거죠. 불닭볶음면의 소스가 4000스코빌이라고 하면, 소스 양보다 4000배 많은 설탕물을 넣으면 매운 맛이 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현대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고추나 후추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과 피페린의 농도를 측정해 냅니다. 라면이나 과자에 쓰여 있는 스코빌 지수 역시 마찬가지죠. 과학의 발전이 과학자들의 혀와 위를 구해낸 셈입니다.
라면의 스코빌 지수도 매번 변합니다. 한 때 매운 라면의 대표주자였던 신라면은 원래 스코빌 지수가 1300SHU에 불과했습니다. 그때는 이 정도만 돼도 매운 라면으로 불렸죠. 지금은 3000SHU가 넘습니다. 진라면 매운맛도 1270SHU에서 2000SHU로 훌쩍 뛰었죠. 스코빌 지수에도 '인플레이션'이 있습니다.
맛있게 매운 맛
다시 돌아가서, 왜 어떤 라면은 스코빌 지수가 엄청나게 높은데도 상대적으로 덜 맵다고 느껴지고 어떤 라면은 스코빌 지수가 그다지 높지 않은데도 혀가 얼얼한 걸까요.
우선 스코빌 지수의 허점부터 이야기해야겠죠. 앞에서도 설명했듯 스코빌 지수는 캡사이신과 피페린 등 고추·후추류의 매운 맛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지수입니다. 이 때문에 대파나 마늘, 양파 등에 포함된 매운 맛 성분인 알리신이나 겨자, 와사비 등에 들어 있는 톡 쏘는 매운 맛 성분인 시니그린 등의 매움은 측정하지 못합니다. 즉 고추 외에 마늘이나 대파 등을 넣어 매운 맛을 더한 제품은 스코빌 지수보다 더 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거죠.
반대로, 스코빌 지수는 높은데 왠지 덜 맵게 느껴지는 제품들도 있습니다. 저는 최근 먹어봤던 신라면 더 레드가 그랬습니다. 스코빌 지수가 7500SHU니 불닭볶음면보다 훨씬 매운데 그렇게까지 맵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우선 국물라면과 볶음라면의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5000SHU의 스프를 사용했더라도 볶음라면의 경우 스프를 거의 온전히 다 먹게 됩니다. 반면 국물라면은 스프의 절반 이상을 남기게 되죠. 그만큼 매운 느낌도 덜 한 겁니다.
국물이 '진한' 것도 덜 맵게 느끼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국물 속에 녹아난 고기의 지방, 단백질 성분들이 매운 맛을 중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동일한 매운 라면 스프를 맹물에 풀었을 때와 사골국물에 풀었을 때 맹물에 푼 스프가 더 맵게 느껴진다는 거죠. 매운 음식을 먹은 후 우유나 아이스크림으로 매운 입을 달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떤가요. 매운 라면을 드시면서 느꼈던 의문들이 조금은 풀리셨나요? 이야기만 풀어 놔도 입 안이 얼얼한 느낌이 드는데요. 오늘 저녁엔 매운 라면 한 봉지 끓여봐야겠습니다. 물론 만두와 계란, 소시지 등 매운 맛을 중화시켜주는 친구들도 함께 말이죠. 여러분도 매운 맛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