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커피
최근 유통·식품업계 전반을 뒤덮은 테마는 양극화다. 한 쪽에선 이 가격에 팔아도 되나 싶은 제품들이 끊임없이 팔리고, 또 한 쪽에선 이 가격을 받고도 팔리나 싶은 제품들이 쉴 새 없이 팔린다. 이 사이에서 어중간한 품질, 어중간한 가격의 제품들은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다.
올해 커피 전문점 시장도 그랬다. 올 한 해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커피 전문점은 스타벅스가 아닌 메가커피였다. 한 잔에 2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대한민국의 커피 트렌드를 지배했다. 그 와중에 1만원이 넘는 바샤커피가 한국에 상륙했다. 동북아시아 첫 매장이다.
저가 커피 전문점 시장의 선두 주자는 메가MGC커피다. 메가커피의 성장세는 독보적이다. 2020년 1188개였던 메가커피의 매장 수는 2022년 2000호점, 지난해 2900호점을 돌파했고 올해 5월 3000점을 달성했다. 연평균 500개 페이스다. 연말 기준 메가커피의 전국 매장 수는 3300개를 훌쩍 넘어섰다. 이디야커피에 앞선 업계 1위다.
메가커피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저가커피 3대장', '메컴빽' 등으로 불리는 컴포즈커피와 빽다방도 메가커피와 함께 저가커피 트렌드를 이끌었다. 컴포즈커피가 국내에 운영 중인 매장 수는 약 2600개로 이디야커피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업계 2위다. 빽다방 역시 1700개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들 세 브랜드의 매장 수만 해도 7600개에 달한다.
저가커피가 시장을 점령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불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해 소매판매액(불변지수) 증가율(~10월 누적)은 -2.1%로, 지난 2023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낮았다. 소매판매액 불변지수가 마이너스라는 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실질 소비가 감소했다는 의미다. 불황이 장기화되며 소비자들은 '더 싼 커피'를 찾았다. 한 잔에 1500~2000원으로 스타벅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가커피는 완벽한 대안이 됐다.
이들은 국내 시장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제 해외 시장 진출로 눈을 돌리고 있다. 메가커피는 지난 5월 몽골 울란바토르에 해외 1호점을 오픈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 진출한 컴포즈커피는 아예 필리핀의 글로벌 식품 프랜차이즈 그룹 '졸리비'에 인수됐다. 빽다방도 필리핀과 싱가포르에 1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K커피의 대명사가 '2000원 아메리카노'가 된 셈이다.
비싸면 더 잘 팔린다
올해 국내에 신규 진출한 해외 커피전문점 중 가장 큰 관심을 끈 건 싱가포르의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바샤커피'다. 오픈하자마자 청담동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싱가포르 여행 필수 구매 선물'로 유명한 바샤커피는 롯데백화점이 국내 운영·유통권을 확보해 지난 8월 한국에 정식 진출했다.
바샤커피에 관심이 모인 건 단연 가격 때문이다. 골드팟 350㎖ 기준 1만6000원부터 시작한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보다 3배 이상 비싸고 컴포즈커피보다는 10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바샤커피는 한 잔에 13만원짜리 커피도 판매한다. 원두 중 가장 비싼 파라이소 골드를 선택하면 무려 48만원이다. 컴포즈커피에서 하루에 한 잔씩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1년을 마실 수 있는 금액이다.
스타벅스도 올해 들어 '특화 매장'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칵테일을 판매하는 '믹솔로지 바'를 도입하거나 해당 매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스페셜 메뉴를 판매하는 등 객단가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기존 매장보다 2~3배 비싼 스페셜티 원두로 만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리저브 매장도 올해 벌써 10년차가 되며 시장에 안착했다.
커피 전문점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스타벅스처럼 확고한 1위 브랜드, 초저가를 내세운 대표 브랜드를 제외한 기존 커피전문점 브랜드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가커피 열풍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디야는 올해 신규 출점을 100개도 채우지 못했다. 2020년 600개에 가까웠던 할리스의 매장 수는 올해 들어 530여개로 줄었다. 파스쿠찌와 탐앤탐스 등 전통의 커피전문점들도 매장 수가 줄거나 정체했다.
업계에선 내년에도 이같은 양극화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4000~5000원대 커피 수요는 스타벅스 등 초대형 브랜드가 흡수하고 저가 커피 수요는 '메컴빽'이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1500원 커피도 맛이 괜찮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어중간한 브랜드들은 맛과 가격 모두 내세울 게 없게 됐다"며 "맛이든 가격이든 인테리어든 어느 하나를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특화 브랜드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