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화장품 시장의 주요 키워드는 '인디 브랜드 인기'와 '수출 호황'이었다. 그야말로 K뷰티의 전성시대다. 과거 대기업이 주도했던 K뷰티의 선봉장 역할이 중소기업으로 완연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아메리칸 드림
올해는 K뷰티의 글로벌 약진이 두드러졌다. 세계적인 한류 열풍 덕분이다. 화장품 수출액도 지난달을 기준으로 이미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운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11월 화장품 수출액은 93억달러(약 13조7000원)로 잠정 집계됐다. 종전 최대치였던 2021년 연간 수출액과 비교하면 1억달러(약 1473억원) 많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화장품 수출액은 100억달러(약 14조7300억원)를 가뿐히 넘어설 전망이다.
수출의 일등 공신은 인디 브랜드다. 코스알엑스, 티르티르, 아누아, 조선미녀, 마녀공장, 스킨1004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브랜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을 강점으로 삼고 있다. 신제품 출시에 즉각적으로 고객 피드백을 반영하며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물론 독창적인 제품과 뛰어난 품질,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추면서 입소문을 타게 됐다.
덕분에 국내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투톱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의 성장세에도 탄력이 붙었다. 한국콜마의 올 1~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1% 증가한 1조8616억원을 거뒀으며 영업이익은 1587억원으로 60.6% 늘었다. 같은 기간 코스맥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각각 19.9%(1조6081억원), 45.5%(1356억원) 증가했다. 양사는 생산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않고 있는 인디 브랜드들을 고객사로 두고 의뢰받은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위탁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K뷰티가 올해 '제2의 전성기'를 이끈 곳은 세계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이었다. 지난 9월 말 전체 수출액 가운데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9.3%다. 작년보다 5.1%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한때 K뷰티 성공 신화를 썼던 중국의 의존도는 줄여나갔다. 중국은 지난해 35.8%에서 올해 27.3%로 8.5%포인트 하락했다.
화장품 업계 '양대 산맥'인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도 미국 사업 비중에 따라 희비가 교차했다. 올 3분기 기준 미국 비중이 7%로 중국(9%)에 비해 낮은 LG생활건강의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3.5% 감소한 4602억원에 머물렀다. 반면 최근 코스알엑스의 자회사 편입으로 서구권(20.6%) 의존도가 중화권(10%)보다 높아진 아모레퍼시픽은 4313억원으로 2.4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도 인디 열풍
국내에선 CJ올리브영, 다이소를 중심으로 인디 브랜드의 인기가 식을 줄 몰랐다. 경기 침체에 따른 고물가 기조로 얇아진 지갑에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 결과다. 여기에 이커머스 업계가 K뷰티를 신성장동력으로 점찍고 화장품 시장의 판을 키워나가며 경쟁을 과열시키기도 했다.
화장품 시장 내 절대 강자인 CJ올리브영은 올해도 인디 브랜드와의 동반 성장을 주도했다. 취급하고 있는 화장품의 80% 이상이 인디 브랜드로 구성돼 있는 올리브영은 올해 연매출 '4조 클럽' 입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뷰티 맛집'으로 불리는 다이소에서 올해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화장품 역시 인디 브랜드가 중심이었다. 온라인 위주로 판매하던 중소 협력사를 발굴해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선보이는 다이소의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품귀 현상을 빚어온 VT코스메틱 '리들샷'은 시중에 판매하는 제품을 소용량으로 줄인 대신 3000원에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올 상반기 출시된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 역시 3000원이라는 가격에도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샤넬의 '립앤치크밤'과 유사한 발색력을 보이면서 '샤넬 저렴이' 제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무신사와 컬리 등 국내 플랫폼 업체들도 인디 브랜드 발굴·육성에 열을 올리는 추세다. 무신사는 지난 9월 뷰티 전문관 '무신사 뷰티'를 앞세워 처음으로 연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 총 41개 뷰티 브랜드 중 80%를 중소 브랜드로 구성했다. 컬리도 10월 개최한 '컬리뷰티페스타'에서 90여개 브랜드 중 절반 이상을 인디 브랜드로 행사장을 꾸몄다.
다만 내년에도 인디 브랜드의 성장세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말에 들어서면서 탄핵 정국 불안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만큼 인디 브랜드의 강점인 가격경쟁력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K뷰티 신흥시장인 미국에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 임박하면서 관세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언한 관세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무관세 혜택을 받아온 화장품에 10% 이상의 관세가 붙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