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가 연이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발(發) 관세 리스크에 계엄령에 이은 탄핵 정국 등 불안한 국내 정세까지 이어지면서 혼란이 가중된 탓이다. 향후 K-뷰티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겹악재에 골머리
화장품은 우리나라 수출 효자 품목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K-콘텐츠 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영향이 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K-뷰티의 누적 수출액은 93억달러(약 13조2674억원)로 잠정 집계됐다. 올해가 끝나기까지 한 달여 간의 시간이 남았지만, 종전 최대치였던 2021년(92억달러)을 이미 돌파한 상태다. 올해엔 수출액이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K-뷰티의 수출을 전폭 지원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 입점, 한류 연계 마케팅 등 K-뷰티의 세계화를 돕는 한편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활용한 무역장벽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식약처와 법제처의 경우 세계 각국의 화장품 법령과 규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K-뷰티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국내 기업들의 화장품 수출 지원 예산을 전년보다 54.3% 증가한 108억원으로 편성했다.
다만 이 같은 정부 지원에도 내년에는 K-뷰티가 고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먼저 K-뷰티의 최대 수출 시장인 북미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관세 정책 변경이 예상된다. 내년 1월 공식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유세 기간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현재 화장품 수출은 무관세를 적용받고 있지만 새 관세 정책이 시행될 경우 K-뷰티의 제품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부결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점 역시 K-뷰티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계속되는 정국 불안은 원·달러 환율을 급등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는 곧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중소기업 인디 브랜드들의 무기였던 가격 경쟁력 하락을 불러온다. 여기에 더해 해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로 국내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무서워요 코리아"
내수 시장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최근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각국 정부가 주한 대사관을 통해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한국 여행 주의보'를 발령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방한 관광객들의 조기 출국은 물론 한국 방문을 계획했던 외국인 사이에서의 인바운드 시장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외국인 매출 비중이 높은 뷰티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래관광객 10명 중 4.5명은 로드숍을 방문해 쇼핑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주로 구매한 품목은 화장품과 향수가 61.6%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은 식료품(54.1%)과 비교하면 7.5%포인트 높다. 고물가 기조에 따라 가성비 중심으로 방한 외국인 소비 행태가 변화한 결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CJ올리브영과 다이소 등 'K-뷰티 성지'로 떠오른 기업들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 방문 시 꼭 들러야 할 쇼핑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다. 이 중에서도 2400개 이상의 뷰티 브랜드들이 입점해있는 올리브영은 그간 외국인 특수를 톡톡히 누려온 곳 중 하나다. 업계에서도 이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K-뷰티를 체험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국에서 제품을 재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며 "계엄 사태로 이들의 발길이 줄어들면 해외에서 K-뷰티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돈이 부족하고 역량이 없어 수출을 하지 못하는 중소 K-뷰티가 많은 상황에서 관세 제도 같은 국제적 이슈까지 생긴다면 K-뷰티의 수출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