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르포]배민만의 기술로…배달로봇 '딜리' 강남을 누비다

  • 2025.03.06(목) 17:06

장애물·사람·차량 피하는 자율주행 가능
횡단보도 나오면 '일단 정지' 후 상황 판단

그래픽=비즈워치

성인의 허벅지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키, 하얗고 네모난 몸체, 전면 LED에 떠있는 두 개의 동그란 눈을 가진 '로봇'이 서울 9호선 언주역 일대에 뜨자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곁에서 누가 조종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씩씩하게 움직이는 하얀 로봇이 신기했는지 행인들은 하나같이 가던 길을 멈추고 로봇을 돌아봤다.

"무인 택배인가봐" 하고 속삭이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를 뒤로 하고 로봇은 6개의 바퀴를 적절히 회전시켜 가며 울퉁불퉁한 인도를 달려갔다. 이 로봇은 바로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자체 개발한 배달로봇 '딜리'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역삼동 일부 지역에서 배민B마트 로봇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아한형제들은 대학교, 아파트 단지, 쇼핑몰 등 제한된 공간 내에서 딜리의 운행 테스트를 마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드디어 사람들과 차량이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이면도로에 딜리를 '실전 투입' 하기로 했다.

지난 6일 오후 3시께 서울 논현동의 B마트 도심형 유통센터(Pick Packing Center, PPC)에서부터 언주역 인근까지 약 800m에 걸친 딜리의 배달 여정을 따라가봤다.

혼자서도 '씽씽'

딜리는 서울 논현동 B마트 PPC 센터 앞에 '주차' 되어 있다. 고객이 B마트에서 물건을 주문하면서 '바로배달', '예약배달'이 아닌 '로봇배달'을 선택하면 딜리의 업무가 시작된다. 주문이 들어오자 PPC 센터 직원이 물건을 포장한 후 나와 딜리 머리에 위치한 문을 열고 상품을 적재했다.

PPC센터에서 출발한 딜리는 첫번째 이면도로 내 횡단보도를 마주쳤다. 이 도로는 언주로로 곧장 이어지기 때문에 우회전 차량이 많았다. 딜리는 횡단보도를 마주치면 일단 무조건 멈춘다. 우회전을 하려는 차량들이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자 딜리는 계속 대기했다. 그러다 더 이상 움직이는 차량이 없자, 바퀴를 굴려 두 대의 차량 사이로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우아한형제들의 자체 배달로봇 '딜리'가 두 차량 사이를 손쉽게 빠져나가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딜리는 이후 구(舊) 경복아파트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큰 어려움 없이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 역시 매끄러웠다. 곧장 이어지는 대로변의 인도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그러자 딜리는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다시 속도를 줄였다. 차병원사거리까지는 3개의 이면도로 내 횡단보도가 더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일단 정지한 후 차량 흐름을 판단하고 움직였다. 횡단보도 앞의 볼라드(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세워져있는 기둥) 사이도 바퀴의 각도를 조절해가며 척척 빠져나갔다.

왕복 6차선 도로인 차병원사거리에서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마주쳤다. 딜리는 횡단보도를 앞두고 가운데의 신호등이 잘 보이는 위치에 멈춰 초록색 보행 신호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자 딜리는 잠시 더 기다렸다가 곧장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행인들을 피하는 것도 여유로웠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딜리는 배송지인 건물까지 막힘없이 오르막길을 올랐다. 배송지에 도착하자 딜리는 건물 앞 인도 끝에서 대기했다. 배송지 도착 100m를 앞두고 알림을 받은 이용객이 건물 밖으로 나와 배달의민족 앱 내에서 '문 열기'를 누르자 딜리의 문이 열렸다. 상품을 꺼낸 후 이용객이 앱에서 '배달 완료' 버튼을 선택하면 딜리의 문이 닫힌다. 딜리는 다시 왔던 길로 다시 PPC 센터로 복귀한다. 이날 배달을 수행하고 복귀하는 데는 약 40분이 소요됐다.

돌발 상황도 OK

배달이 이뤄지는 동안 딜리가 위험한 운행을 한 경우는 없었다. 딜리의 속도는 성인이 평범하게 걷는 속도와 비슷했다. 장애물이 있는 경우 딜리는 속도를 늦췄다. 장애물이 없는 길에서는 속도가 다소 빨라졌지만 이 속도 역시 초당 1.5m를 넘지 않았다. 딜리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아한형제들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관제센터도 운영 중이다.

특히 딜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레이저 시각탐지 및 거리 측정 기술인 라이다(LiDAR)와 여러 대의 카메라를 통해 주변 사물과 장애물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자체 배달로봇 '딜리'가 이면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대기를 하던 중 오토바이가 지나가려고 하자 정지하는 모습. / 사진=정혜인 기자 hij@

예를 들어 급한 일이 있었는지 한 여성 행인이 뒤쪽에서 달려나와 딜리의 앞을 갑자기 가로지르는 순간이 있었다. 딜리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사람이 나타나자 그 즉시 정지했다. 그리고 잠시 그 상태에서 대기하다가 장애물이 없어진 후에야 다시 움직였다.

또 이면도로 내 횡단보도에서는 딜리가 차량이 모두 지나가길 기다린 후 길을 건너려는 순간 왼쪽에서 갑자기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이 오토바이는 딜리를 보고 딜리에게서 약 2m 쯤 떨어진 곳에 멈춰섰다. 하지만 딜리는 오토바이가 근처에 나타나자마자 바로 멈춰섰다. 오토바이는 일반적으로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딜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우아한형제들의 설명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자체 배달로봇 '딜리'가 배송을 마치고 PPC 센터 앞으로 복귀하고 있다. / 사진=정혜인 기자 hij@

딜리의 키가 유치원생 정도의 높이다보니 자칫 보행자와 차량 내 운전자가 딜리를 발견하지 못할 우려가 있긴 했다. 그래서 우아한형제들은 딜리에 오렌지색 깃발을 달아 보행자와 차량이 딜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딜리가 운행하는 동안에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듯한 '띠리링' 하는 소리가 나와 딜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귀로도 알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모든 행인이 딜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딜리가 인도 위에 주차된 차량 두대 사이를 지나려고 할 때였다. 한 중년의 남성 보행자가 딜리를 때리려는 듯한 위협적인 손동작을 했다.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이에 우아한형제들은 이달 말부터 딜리에 음성 발화 기능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딜리는 '지나갈게요', '양보해주세요' 등의 말로 행인들과 간단한 소통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황현규 우아한형제들 로봇프로덕트전략팀장은 "로봇배달은 현재 주문을 하고 받는 시간이 대부분 30분 이내라는 점에서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로봇은 저렴한 가격에 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배달비에 대한 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