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9.96%, 하나금융 9.95%, 신한금융 8.81%. 국민연금이 들고 있는 각 금융지주사의 지분이다.
"이 지분만큼을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갖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그럼 (해당 금융지주사에서) 왕이 됐을 거다. 그만큼 엄청난 지분율이다. 지금은 이걸 갖고 있는 주주가 잠을 자고 있어서 문제다. 자고 있는 주주를 깨워야 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의 얘기다. 이 세 곳 모두 국민연금이 단일주주로는 1대 주주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이사선임권을 통해 이사회에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고 있지는 않다. "주주의 역할을 내버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금융권에서 '대리인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경영진이 회사의 실제 주인인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쓰면서 문제가 나타났다.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 대리인 문제 필연
은행계 금융지주사 가운데 보이지 않는 오너십을 통해 지배구조가 안정된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 그렇지 않은 KB금융. 어느 경우에서나 대리인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은행계 금융지주의 특성상 실질적으론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신한의 경우 17%의 지분을 가진 재일교포 주주그룹이라는 강력한 지지기반 덕분에 CEO의 책임경영이 가능하지만 한편으론 CEO의 전횡 등 황제경영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결국엔 대리인인 CEO가 마치 주인인 양 장기집권·연임을 위해 권력다툼을 벌인다면 이 역시 대리인 문제로 표출된다.
KB금융은 더 심각하다. 지분이 잘게 쪼개져 뚜렷한 목소리를 내는 대주주가 없다. CEO가 연임을 위해 사외이사와 손을 잡았다.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사외이사조차 자기권력화 돼 주인행세를 해서 문제가 됐다.
어떤 케이스든 주주의 이익과는 거리가 멀다.
◇ 시장의 견제·국민연금 역할론 부상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시하는 제 역할을 못한다면 자본시장에서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 신한 사태에서 재일교포 주주들이 목소리를 냈듯, 소액주주를 비롯한 국민연금 등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이 이사회에 참여해 사외이사를 감시하고 은행 경영에 의견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KB 사태처럼 지배구조 문제가 극단적으로 표출돼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면 주주총회를 소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동안 관치논란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가로막아 왔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주주가 콘트롤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딱 10% 만큼의 목소리를 내면 되고 또 최대주주로서 현안에 관심을 두도록 어디까지나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만으로도 이사회나 경영진에겐 큰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공시 강화·이중대표소송제 도입
지주회사 체제에서 자회사인 은행에 주주권 행사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이중대표소송제 도입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KB사태는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은행 이사회와 은행장의 대립에서 비롯됐다. 이 경우 지주회사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은행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이게 작동하지 않았다.
현행 체제에서 KB금융 주주들이 주주권 행사를 한다면 자회사 관리 소홀 등을 이유로 지주회사 이사회와 경영진에 책임을 지울 수 있다. 자회사인 은행에 직접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어 은행 경영진은 오히려 보호받아 왔다. 이중대표소송제는 지주회사의 주주들이 자회사인 은행의 이사회나 행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주주권 행사 등 시장의 감시를 활발히 하기 위해선 공시 범위를 확대하는 등 공시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소장은 "주주나 투자자들이 CEO나 경영진의 활동을 평가하고 감시하기 위해선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며 "현재는 자율공시가 대부분이고 언론에 나오는 내용만을 알게 되는데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공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