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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선진기법은 무슨" 이랬던 국내은행이…

  • 2015.08.05(수) 11:01

외국계 심사기법·중금리대출·수수료 등 참고사례로

 

"씨티은행이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사실상 못 하게 한 겁니다. 부동산 PF라는 게 분양이 돼야 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인데, 분양이 안 되면 어떡하느냐는 논리였어요.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죠. 청약 경쟁률이 몇십대 일로 호황기였고, 경쟁은행들도 급격히 늘리던 시기였으니까요."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지난 2004년 말 한국씨티은행 출범 당시의 일을 소개했다. 미국 씨티그룹 본사에서 실사단이 나와서 옛 한미은행 때부터 해왔던 부동산 PF대출에 대해 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하라고 한 것이다. 사실상 더는 늘리지 말란 얘기였다.

한국씨티은행은 그때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PF대출을 사실상 중단해야 했다. 다른 시중은행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자연스레 대출 만료가 돌아오면서 잔액은 줄었고, 그 잔액이 제로(0)가 됐던 해가 바로 2007년 말이었다. 그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부동산 불패신화도 꺾였다.

"선진기법이란 게 다른 게 아니더라고요. 씨티는 분양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던 겁니다. 과거 미국 금융기관들이 남미에 진출한 이후 남미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큰 손실을 봤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처음엔 씨티은행이나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국내 은행을 인수할 당시 선진금융기법의 도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는 이내 무너졌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산을 적게 늘리고 위험한 곳엔 대출해주지 않는 식이란 거다. 선진기법은 이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또다시 바뀌고 있다. 한국씨티의 PF대출 사례 역시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듯이 말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대책의 하나로 국내 은행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스트레스 금리와 스트레스 DTI(총부채상환비율)는 이런 분위기 전환에 결정타가 됐다. 앞으로의 금리 인상 리스크를 반영해 스트레스 DTI를 산출하고 이에 따라 대출한도를 줄이겠다는 것인데, 그때 참고한 사례가 SC은행이다. 국내 은행 중에선 유일하게 영국 본사 방침에 따라 SC은행이 스트레스 DTI를 80%로 적용하고 있었다. 당국이 선진 심사기법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 지난달 21일 금융위 기자실에서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가계부채 대책 중 하나로 SC제일은행에서 적용하고 있는 '스트레스 DTI'를 내년부터 국내 은행에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10%대의 중금리 대출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2005년 7월 SC은행은 중금리 대출 상품 '셀렉트론'을 내놨다. 신용등급 5~7등급 대출자에게 기존 은행 금리보다 높은 연 10~14%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상품이다. 틈새시장을 노린 상품이었다. 팔리기도 잘 팔렸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부실이 커지면서 SC은행은 지난 2013년 말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판매할 당시 소비자는 물론이고 금융권에서 그야말로 욕(?)도 엄청나게 들었다. 은행이 서민을 상대로 고금리 상품을 판다는 비판이었다. 동시에 외국계 은행에 대한 반감도 생겼다.

그런데 요즘 이런 중금리 상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금융당국이 오히려 독려하고 있다. 은행들도 내심 하고 싶어 한다. 우리은행은 핀테크와 결합해 중금리의 위비대출을 성공적으로 론칭하기도 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따라가는 분위기다.

한때 계좌유지 수수료는 선진기법을 비꼬는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옛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탈이 대주주인 시절 이것을 도입했다가 결국 쏟아지는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지했다. 국내 은행들도 수수료 몇 푼 더 걷는 것이 선진기법이냐며 비꼬기 일쑤였다.

당시엔 공급자도 소비자도 서비스에 대해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은행들은 아직 엄두를 못 낼 뿐이지 너무나 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이자이익은 갈수록 줄어들고, 수수료 수익을 늘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얼마 전 씨티은행은 외화예금인 유로화 예금과 스위스 프랑화 예금에 계좌유지 수수료를 걷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의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손해를 보는 부분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한 것이다. 다만 잔액 1억 원 이상의 기업고객에 한해 아주 제한적으로 적용했다.

씨티은행은 또 이달 말부터 자기앞수표 발행수수료를 현행 300원에서 500원으로 인상한다. 고객이 요청한 금액에 맞춰 발급하는 비정액 수표만 해당한다. 업무처리에 드는 비용을 고려한 조치로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한 수수료 현실화다.

국내 17개 은행 중에선 6곳 만이 이 수수료를 받고 있고, 이마저도 신한은행과 수협은행은 통장 인출을 통해 자기앞수표를 발행할 때는 수수료를 면제해 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과거에 외국계 은행들이 그런 수수료나 상품을 도입할 당시엔 국내 정서나 현실을 무시한 제도였기에 역풍이 컸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선진기법이란 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외국계 은행이 우리보다 경험이 많아 그만큼 또 참고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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