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금융지주) 지배구조가 새로운 변화의 문턱에 섰다. 올해 연말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주요 금융그룹 수장의 임기가 줄줄이 끝난다. ‘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한 다양한 변수들로 대내외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연초 [병신년, 변화무쌍한 은행 지배구조 기상도] 기획의 연장선에서 주요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이슈를 다시 짚어본다. [편집자]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사태' 이후 6년간 이어온 한동우 시대의 피날레를 앞두고 있다.
그룹 서열 1위인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물론 2위인 조용병 신한은행장의 임기가 동시에 돌아오면서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포스트 한동우' 경쟁이 조용병 신한은행장과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의 2파전으로 굳어지면서 대대적인 세대교체 또한 불가피할 전망이다.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내년 초, 신한지주는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를 신호탄으로 한달간 긴박한 회장 선임 레이스에 돌입한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1등 금융그룹 신한금융을 이끌고 나갈 주인공이 누가 될지 벌써 관심이 뜨겁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
◇ 1년간 우군 확보 전력‥한 회장의 복심은?
1948년생인 한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돌아오지만 내년이면 만 69세로 나이제한(만 70세)에 걸려 연임이 어렵다. 규정상으론 1년을 더 할 수 있지만 한 회장은 직간접적으로 연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회장은 대신 포스트 한동우를 위한 준비 작업을 빈틈없이 진행했다. 실제로 차기 회장을 결정할 회추위원 대부분은 그동안 한 회장과 함께 신한금융 이사회를 끌어온 사외이사들이다. 회추위는 이상경 회추위원장(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비롯해 고부인(산세이 대표이사), 박철(전 리딩투자증권 회장), 필립 에이브릴(BNP파리바 일본대표), 히라카와유키(레벨리버 대표이사) 사외이사와 한동우 회장(사내이사), 남궁훈 비상무이사 등 7명으로 구성됐다.
특히 한 회장의 서울대 법대 1년 선배인 남궁훈 이사는 확실한 우군으로 꼽힌다. 한 회장이 처음 선임된 2011년부터 사외이사를 맡아온 남궁훈 이사는 올해 3월 사외이사 최대 임기인 5년을 꽉 채웠다. 하지만, 한 회장은 '비상임이사'라는 묘수(?)를 동원해 그를 이사회 멤버로 남겨뒀고, 이번 회추위원으로도 참여시켰다. 내년 3월이면 임기 5년을 채우는 이상경 위원장도 현재 사외이사 중에선 한 회장과 가장 오래 함께 한 인물이다.
한 회장은 6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사외이사는 물론 재일교포 주주로부터도 신뢰를 얻었다. 결국 한 회장과 그의 경영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사들이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만큼 한 회장의 복심이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한 회장의 영향력이 당분간 유지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신한금융은 차기 회장 선임이 마무리되면, 한 회장 주도로 사외이사 4명이 참여하는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를 열어 차기 신한은행장도 선임할 예정이다. 차기 회장은 물론 은행장까지 한 회장 그룹이 선임하면서, 새롭게 신한금융을 끌고 나갈 차기 회장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형식상으론 많지 않은 셈이다.
◇ 조용병과 위성호, 2파전 구도 유력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차기 회장 레이스는 조용병 신한은행장과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간 2파전이 유력하다. 두 사람은 2년전 신한은행장 자리를 놓고 한차례 경쟁했고, 당시엔 조 행장의 승리로 끝났다. 글로벌과 자산운용 부문에서 강점을 가진 조 행장은 신한은행의 어젠다에 적합한 인물이란 평을 얻었다. 그룹 안팎에선 6년 전 '신한사태'를 거론하는 이들이 여전하다는 점도 당시 중립을 지켰던 조 행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위 사장은 올해 8월 연임의 기로에서 1년 연임에 성공하면서 이 둘의 경쟁구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위 사장은 특히 지난 3년여간 신한카드를 이끌며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호실적을 이끌었다. 핀테크 등의 새로운 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도 얻는다.
다만 신한사태 당시 지주 홍보임원을 맡았던 이력으로 '라응찬 사람'이라는 딱지가 주홍글씨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한 회장은 신한사태의 그림자를 완전히 청산하고 싶은 분"이라며 "게다가 그의 임기 중 마지막 의사결정인 점을 고려하면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 또다시 등장한 올드보이 '최방길, 권점주'?
금융지주의 맏형 격인 은행장은 지주 회장 레이스에서 상당한 프리미엄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조 행장은 글로벌과 자산운용, 영업, 인사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경력까지 더해지며 여러모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다만 신한은행장을 맡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검증기간이 짧다는 건 핸디캡이다.
게다가 57년생인 조 행장은 한 회장(48년)과는 무려 10년의 차이가 난다. 위 사장(58년생)도 마찬가지다.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51년생)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급격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최근 권점주 전 신한생명(55년생) 부회장과 최방길(51년생) 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의 이름이 회장 후보로 함께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그룹사 안팎에선 '뜬금없다'는 반응이 대세다. 최방길 전 사장은 신한의 옛 조흥은행 인수 이후 조흥은행 부행장을 역임하는 등으로 내부 신망이 두텁다. 권점주 전 부회장도 은행 내 '영업통'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최 전 사장은 정작 신한은행에서 부행장을 지낸 경력이 없고, 권 전 부회장은 신한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시 수석부행장으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이 과정에 불법 계좌조회 의혹 등으로 지난해 연말 당국의 징계대상에 올랐다. 퇴직한 상태여서 실제 제재는 받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현직을 떠난 지 4~5년이나 흐른 데다 그룹 내부적으로 CEO 경쟁 구도에서 밀려난 지 오래됐다는 점에서 다크호스가 되긴 어렵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신한금융 한 고위관계자는 "한 회장이 최초 선임될 당시엔 신한사태 수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안정된 상황에서 굳이 현직을 떠난지 오래된 분을 모실 충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