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롯데손해보험과 현대라이프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오는 6월말부터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의 신용·시장리스크를 RBC에 반영토록 하면서 몸집에 비해 계열사 퇴직연금자산 비중이 높은 두 회사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에 반영되지 않았던 리스크를 좀 더 정교하게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퇴직연금 자산이 많을 수록 RBC하락이 크게 이뤄지는데 특히 계열사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회사들의 경우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RBC하락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 롯데손보·현대라이프, 계열사 퇴직연금 부메랑
롯데손해보험의 지난해말 기준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2조2854억원으로 총 퇴직연금 적립금 2조2903억원의 99.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총 적립금 가운데 계열사 비중은 42.1%이고 손보사 가운데 계열사 퇴직연금 규모가 가장 크다.
특히 롯데손보가 퇴직연금 운용수익률과 지급준비금 등을 포함해 별도 계정으로 관리하는 특별계정자산(퇴직보험도 포함)은 지난해말 기준 5조7874억원에 달한다. 업계 1위인 삼성화재 특별계정자산 5조6290억원(미지급금 포함)을 넘어서는 규모다. 지난해말 롯데손보의 총 자산이 12조8021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퇴직연금을 통해 운용하는 자산이 총 자산의 45.2%에 달하는 것이다. 특별계정자산이 총 자산의 7.41% 수준인 삼성화재를 비롯해 대부분의 회사들이 10% 아래인 것과 비교하면 5~6배 이상 높은 규모다.
현대라이프의 경우도 상황이 다르지않다. 지난해말 기준 현대라이프의 총 퇴직연금 적립금은 1조2968억원으로 이중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1조2426억원이다. 또 총 적립금 가운데 계열사 퇴직연금 적립금은 1조2658억원으로 97.6%에 달한다. 대부분의 퇴직연금이 계열사 물건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험사 가운데 유일하게 총 적립금의 50%를 넘어서고 있다. 2013년 보험업계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논란으로 총 적립금 대비 계열사 물건 비중을 50% 아래로 낮추자는 자율결의를 했지만, 말 그대로 '자율'인 만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다.
현대라이프는 현대차그룹이 2012년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며 기존 보험사들과 다른 새로운 상품과 영업전략을 꾀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계열사 퇴직연금 물량을 통해 몸집을 늘리고 수익을 보전해 온 것이 독이된 셈이다. 지난해 보험업법감독규정 및 시행세칙 개정으로 퇴직연금 운영리스크가 RBC에 반영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자산대비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회사들에 대해 별도의 가이드를 통해 RBC하락에 대비하라고 전달했다. 이에 현대라이프는 올해부터 비계열사 퇴직연금 영업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올해 3월말 기준 비계열사 퇴직연금 적립금은 306억원으로 전체의 2.43% 수준이다. 지난해말 309억원으로 전체의 2.38%였던 것과 비교하면 0.05%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자산에서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RBC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RBC(지급여력비율)는 보험사에 내재된 각종 리스크량(요구자본)을 산출해 이에 상응하는 자본(가용자본)을 쌓도록 한 제도로 보험사의 자본적정성 지표다.
기존에는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의 시장·신용리스크를 RBC에 반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퇴직연금내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워낙 크고 적립금의 운용손익이 보험사에 귀속된다는 점을 감안해 금융당국이 RBC를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해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의 신용위험액과 시장위험액이 적용될 경우 분모에 해당하는 요구자본이 늘어나는 만큼 RBC비율은 낮아진다. 특히 롯데손보와 현대라이프의 경우 수백억원에서 1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요구자본 확대가 예상되고 있어 충격이 클 수 있는 만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즉 늘어나는 요구자본량을 오는 6월에는 35%만 반영하며, 2019년에 70%, 2020년 6월부터 100% 반영한다.
그러나 롯데손보가 자체 영향도를 분석한 결과 올해말 퇴직연금 리스크를 35%만 반영해도 RBC는 23.1%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후순위채 발행으로 RBC를 170.12%까지 끌어올렸지만 다시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늘어나는 요구자본량 100%가운데 35%만 반영된 수치임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RBC비율 하락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상태다.
◇ 현대라이프, 자본확충 위해 동분서주..롯데손보는 고심
현대라이프가 지급여력비율(RBC) 하락에 대비해 다양한 자본확충 방안을 추진하는 반면 롯데손보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현대라이프의 지난해말 기준 특별계정자산은 6조5646억원, 이중 원리금보장형이 6조5439억원에 달한다. 생보사의 경우 손보사와 달리 특별계정에 변액보험의 적릭금 및 보증준비금 등이 포함되지만 이 규모는 189억원 수준이다. 즉 특별계정자산의 대부분이 퇴직연금과 퇴직보험 자산으로 현대라이프 총자산 13조137억원의 50.44%에 달한다. 전체 운용자산 7조7035억원과 비교하면 85.2%다.
RBC의 경우 자산운용과 자산구성에 따라 적용되는 위험계수가 다른 만큼 현대라이프가 롯데손보에 비해 RBC 하락율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체 자산대비 퇴직연금 자산 비중이 커 RBC영향도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현대라이프가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며 RBC가 하락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자본확충 작업을 진행중이다.
현대라이프는 지난해 11월과 12월 신종자본증권 400억원과 후순위채 600억원을 발행한 이후 올해 2월에도 6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또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옥 1관 매각도 추진중이다. 올해 8월에는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계획돼 있다. 지난해말 175.93%까지 끌어올린 RBC를 다양한 자본확충을 통해 연말까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라이프 관계자는 "새로는 국제회계제도(IFRS17)와 건전성제도(RBC) 변경, 퇴직연금 RBC반영 등 RBC비율 하락을 대비해 단계에 맞춰 자본확충 방안을 추진중"이라며 "지난 2월 6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비롯해 부동산 매각 작업도 막바지 작업중이며, 오는 8월 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마무리 되면 지난해말 170% 이상으로 끌어올린 RBC를 연말까지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손보의 경우 지난해말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 이후 별다른 자본확충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롯데손보 관계자는 "더이상 증자는 어려운 상태여서 증자 이외의 다양한 자본확충 방안을 고심중"이라면서도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현대라이프와 롯데손보만큼 영향이 크진 않지만 자산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 보험사들의 경우에도 자본확충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도입을 대비해 자본확충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 장기적으로 자본확충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편 금감원은 2021년 RBC를 대체해 도입될 새 보험건전성제도(K-ICS)에서는 퇴직보험과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 리스크를 금리충격 시나리오별로 변동 금액을 산출해 적용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