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진행된 신한카드 공채에서 한 지원자는 서류전형 순위가 전체 1114명 중에 663위에 머물렀다. 당시 합격 커트라인은 128등. 당연히 떨어져야할 성적이지만 '무사히' 서류전형에 통과했다. 임원면접에서 면접관으로부터 "태도가 이상하다" "발표력이 어수선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최종합격했다. 비결은 그의 부모님에 있었다. 그는 신한금융 임원의 자녀, 이른바 '금수저'였다.
11일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2일부터 이달 4일까지 진행된 신한금융 채용검사 결과 총 22건의 특혜채용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12건, 신한생명 6건, 신한카드 4건이다. 채용비리 청탁자중 절반 이상(13건)이 임직원 자녀였고 지방언론사 주주와 고위 관료 등도 포함됐다. 특히 신한생명은 특혜채용 6건 모두 임직원 자녀였다. 금감원은 남녀 차등 채용과 연령차별에 대한 자료도 확보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와 증거자료를 검찰에 이첩했다.
우선 신한은행은 2013년 채용과정에서 전형별 요건이 미달한 12명의 지원자에 대해 채용특혜를 줬다. 당시 임직원 자녀 5명, 외부 추천 7명이다. 임직원 자녀는 학점이 낮아 서류심사 기준에 미달했고 실무면접에서 최하위권 등급을 받았지만 최종합격했다. 지방언론사 주주의 자녀와 전 고위관료 조카 등도 연령초과 등 이유로 서류심사 자격에 미달했지만 입행했다.
신한생명은 2013~2015년 채용과정에서 신한금융 임직원 자녀에 대해 임의로 서류심사 점수를 조정해 채용특혜를 줬다. 이중 한 지원자는 서류심사에서 전공점수 만점(8점)보다 높은 10점을 받아 서류전형에 통과, 최종합격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채용과정에서 인사팀이 쓴 인사동향자료에 '외부추천'이 적힌 지원자 4명에 대해 특혜 채용했다. 이중 "태도가 이상하다"고 지적받은 지원자는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 해외사업 진출을 계획한 신한카드가 특별 채용했다고 회사 측은 해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지원자는 영어, 일어, 중국어가 능통해 해외 비즈니스를 위해 뽑았는데 왜 순위조정을 했냐고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세상이 겁나서 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현재 이 직원은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령과 성별에 대한 차등채용도 암암리에 이뤄졌다. 신한은행은 채용공고에서 연령에 제한을 둔다는 점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2016년 상반기 공채 서류심사에서 남자는 1988년 이전 출생자를, 여자는 1990년 이전 출생자를 탈락시켰다. 2013년 상반기 서류전형에선 1985년생부터 1989년 이후 생까지 연령에 따라 점수를 1~5점으로 차등 배점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신입직원 채용공고문에 '연령제한 없음'을 명시하고도 33세 이상(병역필) 및 31세 이상(병역면제) 지원자는 서류에서 탈락시켰다. 또 서류전형부터 남녀 채용비율을 7대 3으로 정해 면접과 최종선발까지 이 비율을 유지하도록 했다.
당초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 한동우 전 신한금융 회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홍성균 전 신한카드 부회장,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김형진 신한금융투자 사장 등 자녀가 신한금융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어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증거 인멸 등 우려가 있어 가급적 특정인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며 이번 채용비리 의혹 리스트에 누가 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음서제도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 과정에서 채용관련 자료가 대부분 삭제돼있어 검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은 탈락자 서류는 14일이내에 삭제하는 등 자료 대부분이 폐기되고 없었다"며 "포렌식을 통해 1만개 이상 파일을 복구해 찾아낸 것이 엑셀 파일 한개였다"며 "그 엑셀 파일도 내용은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검찰 수사를 충실히 받겠다"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