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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카드업계 '20년 난제', 석달만에 풀수있나

  • 2018.06.15(금) 14:46

당국 의무수납제 폐지 논의하자 업계 일방통행 우려
정책 '속도'보다 '방향' 중요…업계 목소리 귀기울여야

카드수수료 체계가 또 바뀐다는 소식은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금융당국이 지난 1998년 도입된 의무수납제에 대해 20년 만에 '폐지'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의무수납제에 대한 논의 자체는 환영하지만 폐지를 먼저 공론화하면서 마치 방향을 미리 정해주고 업계가 알아서 맞추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꼈다"고 토로했다.
 

의무수납제란 카드가맹점이라면 아무리 소액이라도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병을 살때도 점주 눈치 보지않고 신용카드를 내밀수 있는 것도 이 제도 덕분이다.
 
소비자는 편리해지고 카드사는 수수료를 더 많이 받을수 있지만 카드 가맹점은 수수수료 부담이 커질수 밖에 없어 지난 20년간 함부로 이 문제를 손대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카드수수료 개편을 위해 구성한 범정부 태스크포스가 '뜨거운 감자'를 건드렸다.

의무수납제는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다. 카드사로서는 의무수납제 덕분에 카드결제가 많아진 측면도 있다. 반면 의무수납제 때문에 소액결제에서도 카드 수수료를 낼 경우 역마진이 발생하는 가맹점 측의 반발도 심했다.

그 결과는 수년간에 걸쳐 가맹점 카드수수료 인하로 이어졌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이 의무수납제 도입 이후 수수료 장사를 통해 손쉽게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으니 수수료율을 낮춰야 한다고 끊임없이 압박했다.

1990년대 초반 4.5~5%대에 이르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은 의무수납제가 도입된 뒤 수수료 인하 압박이 계속되면서 최근 2%대까지 떨어졌다.
 

카드 수수료가 인하될수록 카드사 수익도 떨어졌다. 가맹점 수수료는 카드사 수익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수수료 인하 조치가 한번 발효될 때마다 카드사의 순익이 20~30%씩 사라졌다. 카드사는 인력을 줄이고 카드 혜택과 밴 업계에 주는 중개수수료를 축소했다. 

카드사와 밴 업계 사이의 갈등도 심각해졌다. 중개수수료가 대폭 인하되면서 생존위기에 몰린 밴 업계는 카드사를 상대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소까지 준비 중이다. 신용카드의 각종 혜택이 줄어들다 보니 카드 이용자들도 불만이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여파는 결국 조금씩 소비자와 영세업자들의 피해로 돌아오는 셈이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의무수납제 폐지가 논의가 시작됐지만 카드업계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고 있다. 그동안 보여준 당국의 일방통행 때문이다.

그간 당국은 금융소비자의 편의를 위해서라며 의무수납제를 20년간 밀어 붙여왔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많았다. 중소형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혜택은 넓히고 대형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혜택은 축소하는 '조삼모사'식 개편으로 카드사와 대형유통사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고 유흥업소가 수수료 개편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곤혹을 겪기도 했다.

이번 태스크포스는 3개월여간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태스크포스 구성 발표이후 보름 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차례의 킥오프회의만 진행됐을 뿐이다. 20년간 풀지못한 난제를 석달만에 풀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수 밖에 없다.

카드업계에서는 의무수납제의 문제점이 뚜렷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짧은 기간 동안 폐지를 논의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카드사와 밴 업계, 과세 당국, 금융 당국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카드업계는 의무수납제에 대해 각 카드사와 밴 업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해외사례 등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의 경우 국내와 같은 단순하고 일방적인 형태의 의무수납제를 도입한 곳을 찾기 힘들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의무수납제 대신 지급 수단간 가격 차별을 허용하고 있다. 같은 상품에 대해 현금가와 카드가의 차이를 인정한 것이다. 국내는 불법이다. 미국은 2003년 의무수납 규정을 없앴으며, 호주도 지난 2003년 가격 차별을 허용해주면서 의무수납 규정을 폐지했다.

제도 보완 없는 폐지는 의무수납을 통해 편의를 누리고 있는 소비자의 불만을 살 수 밖에 없다. 폐지가 아니더라도 정부가 카드수수료를 지원하거나 현금-카드결제 간의 가격 차별을 허용해주는 등의 대안이 많다. 의무수납제 도입 이후 카드업계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폐지도 답은 아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당국이 무조건 엑셀을 밟기전에 업계에게 '어디로 갈지' 묻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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