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매출 5억원 이하의 영세자영업자 대상 카드가맹점 수수료를 0%대로 낮추는 대신 신용평가 업무를 카드사에 허용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조삼모사'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국회 업무보고에서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카드사에 신규업권을 보장하고 소상공인 가맹점수수료는 시원하게 푸는 게 어떤가"라며 "신용평가산업이 빅데이터를 갖춘 신용카드사에 적합한 업종이라고 본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적용해볼만하다"고 답했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 얘기를 전해들은 카드업계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미 신용평가 시장은 기존 업체들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다 설사 신용평가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기존 핵심사업을 대체해줄 신사업으로 거론될 사안이냐에 회의적이다.
신용평가업은 정부 허가가 필요한 사업이다. 현재 국내 신용평가시장은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3개의 회사가 과점하고 있다.
세 회사는 오랜기간 비슷한 시장점유율과 실적을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새로운 신용평가사가 등장해 경쟁을 붙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특히 동양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을 겪으면서 새로운 신평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따라 최근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원회가 '제4 신용평가사' 허용 문제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프앤가이드 등이 새로운 신평사에 도전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카드사가 신용평가사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 카드업계는 회의적이다.
우선 기존 신평사들에 대해서도 신용평가 품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8개나 되는 전업카드사에 신평업을 허용해 주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카드사가 빅데이터를 통해 개인에 대한 신용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기업에 대해서는 데이터와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신용카드사 입장에서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고 신평업에 진출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신평업과 카드 수수료 수익의 차이가 커 등가교환이 안되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용평가 3사의 지난해 매출(영업수익)은 총 1137억원이다. 영업익은 217억원, 당기순이익은 231억원 수준이다.
반면 국내 전업카드사 8곳의 지난해 수수료 수입은 11조7000억원 규모다. 추혜선 정의당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이중 연매출 5억원 미만의 영세가맹점에서 올리는 매출비중은 약 11% 정도다. 액수로는 1조1870억원 규모가 된다.
금융당국의 국회 보고에서 나온 내용대로 적용해보면 '카드사가 1조원이 넘는 시장을 포기하면 1000억원대 시장에 진입시켜주겠다'는 얘기가 된다.
카드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금융위가 지난 5월 카드수수료 개편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지만 한차례 킥오프회의만 했을뿐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1조원을 포기하면 1000억원 시장에 진출시켜보겠다는 것은 제대로된 논의도 하지 않고 업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도 불편해 하고 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신용평가는 금융과 산업에 큰 영향을 주는 민감한 분야"라며 "카드사 수수료 재산정을 위한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성격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