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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은행 밖으로 나가는 우리은행

  • 2019.04.02(화) 16:32

우리銀 드라이브스루 환전 '샌드박스'에 선정
은행 핵심업무 제3자에게 위탁하는 첫 사례
편의점 뱅크 활발한 일본처럼 개방될지 관심

신사업을 추진하는 금융사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샌드박스(모래 놀이터) 19곳이 문을 연다. 금융위원회는 샌드박스 사전신청 88개사 105개 서비스 중 19개의 서비스를 우선심사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중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우리은행이 신청한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차에 탄 채 주문하는 매장) 환전·현금인출 서비스다. 공항 가는 길에 드라이브 스루 커피숍에 들러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환전금 주세요'라고 말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요즘 환전은 은행 앱을 많이 사용한다. 은행지점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수수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현재 방식은 은행 앱으로 환전을 신청한 뒤 고객이 지정한 은행지점에 들러 환전금을 찾는 방식이다. 드라이브스루 환전 서비스가 시행되면 고객이 환전금을 받을 수 있는 수령지에 은행 지점외에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추가된다.

그간 입금·지급·환전 등 은행의 핵심업무를 은행 밖에서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 제3조(업무위탁 등)를 보면 금융기관은 금융업의 본질적 요소를 포함하는 업무를 제3자에게 위탁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우리은행은 공항 근처 지점에 우선적으로 드라이브 스루 환전 서비스를 도입하고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가진 업체와 제휴를 위해 비공식적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번 달에 이 서비스가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로 최종 지정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업계에선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180여개 드라이브스루 매장을 운영 중인 스타벅스를 꼽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 환전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선 차량번호 자동인식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현재 이 시스템을 갖고 있는 곳은 국내에서 스타벅스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스타벅스는 차량번호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도 선보였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은 차 안에서 얼마든 기다릴 수 있는데 차에선 내리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은행이 문 닫는 주말이나 야간에도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실무를 맡고 있는 우리은행 관계자는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환전이 1단계이라면 2단계는 현금인출, 3단계는 증명서 발급 등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우리은행은 드라이브 스루 환전 서비스와 함께 100만원 미만 현금인출 서비스도 샌드박스 대상으로 신청했다.

드라이브 스루 환전 매장이 도입되려면 현송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현재 우리은행은 현송업체를 통한 외환 배달과 무인 환전기 설치 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 금고를 설치해야 하는 만큼 보안 문제도 있다. 보안 수준도 CCTV 수준에서 24시간 보안 출동 시스템 등으로 높이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전요섭 금융위 은행과장은 "일단 드라이브스루 환전은 아이디어 수준으로 보안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기간이 필요하다"며 "심의를 거치면서 보안 문제는 부대조건으로 달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규제 완화가 '드라이브 스루 환전'에 머물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견고했던 은행 규제가 풀릴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도 은행 점포를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한 은행업계 관계자는 "드라이브 스루 환전은 상징적인 규제 완화"라며 "해외를 보면 편의점이나 세탁소에서도 돈을 찾을 수 있다. 어차피 은행이 전국을 다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소형 에이전트를 활용하면 은행의 영업시간도 늘어나는 셈이 된다. 시작은 조그맣지만 나중에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규제 개선"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도 이런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이번에 금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환전·인출 서비스와 결합하면 은행 서비스 이용가능 공간과 시간이 확대된다"며 금융상품 판매가 가능한 일본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금까지)입금·지급 업무들은 금융회사가 아닌 데에 위탁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데 일본 편의점은 계좌 개설이 되고 예금가입이 가능하다. 아마 이런 것을 참고해 (우리은행에서) 판매채널의 다양화 측면에서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2001년 세븐일레븐이 운영하는 세븐은행이 문을 열 정도로 일찌감치 은행 문턱을 낮췄다. 대형마트 이온그룹이 운영하는 이온은행도 2007년 인가를 취득했고 지난해 로손 편의점도 은행업무를 시작했다. 2002년 소매금융 전문은행으로 출범한 리소나은행의 회장을 맡은 호소야 에이지 전 회장은 "은행의 상식은 세상의 비상식"이라며 은행의 경쟁상대로 유통과 소매업자를 지목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번 샌드박스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의 비상식'이 상식으로 돌아 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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