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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은행 '임직원 성과지표' 어떻게 바뀔까

  • 2019.09.27(금) 10:50

파생상품 손실사태 후 KPI 도마에
은행들, 성과중심에서 고객중심으로 개선 추진
"안전자산 상품만 판매?"..부작용 논란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판매한 일부 해외 주요국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과 파생결합펀드(DLF·Derivative Linked Funds)의 원금손실이 본격화 되면서 은행이 영업실적 중심의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 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성과보상체계를 개선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사실상 KPI를 뜯어 고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은행들도 KPI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 은행 KPI는 어떻게 정해질까

KPI란 쉽게 설명하면 임직원들이 받는 성적표 입니다.

기업은 매년 혹은 상반기와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주요 경영방침을 정한뒤 개인별, 조직별로 목표를 정합니다.

이후 해당연도 혹은 반기가 끝나면 경영방침에 따른 성과를 평가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KPI입니다. KPI는 인사나 성과급 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임직원 개개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KPI는 통상 객관적으로 쉽게 파악이 가능한 것을 잣대로 합니다. 즉 매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와 같은 재무적인 요인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이야깁니다.

은행이 정하는 KPI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은행이 다른 업권과 달리 무엇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행의 주 수익원은 대출을 통한 이자이익과 금융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으로 나뉩니다.

따라서 평가를 위한 기간 동안 본사에서 경영전략을 통해 '이자수익을 늘려야 한다'는 경영방침을 세웠다면 은행 영업점 직원들은 대출상품 판매를 위한 영업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반대로 비이자수익을 늘려야 한다면 신용카드, 펀드 등과 같은 금융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겠죠.

올해의 경우 은행 KPI는 기업대출증가와 비이자이익 확대에 집중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초 은행들의 경영전략을 보면 기업대출과 비이자이익 확대가 강조됐기 때문입니다.

은행 한 영업점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가계대출은 줄이고 기업대출과 비이자이익을 늘리라는 방침이 본사에서 내려왔다"며 "영업점의 위치, 해당 직원의 주요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KPI의 배점이 해당 부분에 높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다른 것 보다 집중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단순 송금, 예·적금 가입등을 위해 은행창구를 찾았다면 은행 직원은 카드 발급, 펀드 가입 등을 권유할 것입니다. 이는 수수료 수익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비이자 이익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 은행 KPI, 뭐가 문제일까 

그렇다면 윤석헌 금감원장(사진)은 왜 은행의 KPI를 개선하라는 메시지를 은행장들에게 전달했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관련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은행의 KPI가 실적과 성과 위주로 돼 있다보니 불완전판매 등과 같은 금융사고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은행 직원들이 좋은 성적표를 받는데만 집중하다 보니 금융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실제 지난 4월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계획' 자료에 따르면 주요 5대 은행의 KPI 중 이자수익, 수수료수익, 상품판매, 고객유치 등 영업 관련 항목이 80.4%에 달했습니다. 100점 만점 짜리 과목 중에 80점은 영업을 통해서 채워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나머지 20%는 근태, 고객 만족도 등으로 구성됩니다.

DLS·DLF 불완전판매가 있었다는 논란이 KPI 개선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영업성과 중심의 KPI가 문제가 된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이야기 만은 아닙니다.

미국 웰스파고 은행은 2016년 한 직원이 고객 동의없이 4년여 간 350만여개의 유령계좌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이후 웰스파고는 고객서비스, 성장성, 리스크 관리 등을 중심으로 KPI를 전환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KPI개선을 주문해 왔습니다.

금융당국은 2013년 은행의 KPI가 신용카드발급에 가중치가 높게 쏠려있다는 점을 우려해 이를 시정할 것을 권고했고 2016년에는 KPI에 소비자 만족도 관련 요소를 반영하라고 행정지도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업성과 중심의 KPI가 운영됐던 것은 어찌됐건 은행도 이익을 내야 하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은행이 '오너기업'이 아닌 점도 영업성과 중심의 KPI가 이어지는 이유로 꼽힙니다.

국내 은행장의 임기는 통상 3년입니다. 1년 임기도 있습니다. 임기 동안 뚜렷한 성과, 즉 실적을 내지 못하면 재신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 은행 KPI 어떻게 바뀔까

DLS·DLF 불완전판매 논란이 일자 은행들이 KPI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고객 자산관리 체계를 개편하기로 하면서 KPI를 가장 먼저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의 실적보다는 고객서비스 만족도, 고객 수익률 개선도 등 '고객에게 도움이 됐는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KEB하나은행의 경우도 고객 자산 수익률, 고객만족도 증가 등이 K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중입니다.

신한은행의 경우 모기업인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회장이 KPI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조 회장은 지난2일 창립 18주년 기념사를 통해 "고객의 가치와 직결되는 고객 자산 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그룹의 핵심 평가기준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KB국민은행도 개선을 추진중입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객에게 투자상품을 권유할 때 말로만 고객중심을 외치는 것이 아닌 고객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수 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본부, 영업현장 모두 기존의 평가 비중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평가기준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옵니다.

은행들이 검토하는 개선안의 핵심은 고객 만족도 증가와 고객 자산 수익률 증가입니다. 고객 만족도의 경우 직원의 친절도 등에 따라 나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고객 자산 수익률은 은행 직원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크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투자하겠다고 한 상품의 수익률을 은행이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따라 금융상품의 수익률 등이 결정될 텐데 이는 은행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은행은 여러가지 자산운용 상품들을 어떻게 묶어 상품을 판매할 것인지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특히 최근 DLS·DLF가 원금 손실이 발생해 논란이 된 만큼 안전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꾸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모험자본에 투자하는 상품을 은행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 입니다. 우리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산업보다는 이미 자리잡은 안전한 곳에만 돈이 흘러들어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의 취지가 약해지게 되는 셈입니다.

은행 한 관계자는 "수익률은 은행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금융상품은 금융시장의 변화에 따라 수익률이 영향을 받는 경우가 큰데, 이를 은행이 컨트롤 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게다가 최근 파생상품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안전 자산 위주의 상품을 판매하려는 경향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주요 은행들은 KPI를 고객 중심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은행의 성장성을 유지하면서도 고객보호, 금융사고 방지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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