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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코로나사태, 생산적 금융을 다시 생각한다

  • 2020.04.20(월) 17:54

금융당국, 3년간 '생산적금융' 강조했지만 평가는 '글쎄'
코로나19 사태 발생하자 은행 중소기업 대출 급증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던' 그동안 정책 다시 생각해봐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의 핵심 정책 기조는 '생산적 금융'이다. 은행 자금이 부동산대출 등 가계가 아닌 중소기업에 지원되도록 해 경제의 허리를 튼튼하게 하겠다는 목표였다.

3년 가량이 넘는 시간동안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는 어느정도 약발이 먹히는 모습이었다. 모든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매년 우량 중소기업을 발굴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경영계획이 제시됐다. 그 결과 주요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은 '생산적 금융' 이전보다 증가폭이 커졌다.

하지만 올해들어 정부가 3년여간 공들여온 '생산적 금융' 보다 더 '강한 놈'이 중소기업 대출증가세를 이끌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가 주인공이다. 그동안의 정책보다 질병이 더욱 큰 효과를 보이고 있는 '웃픈(웃고 있지만 슬픈) 상황'이라는 얘기다.

올해 1분기 은행업계의 기업대출 증가액은 32조3228억원으로 조사됐다. 2018년 같은기간 14조5863억원, 2019년 13조1157억원에 배에 달한다. 올해 1분기 기업대출 증가액 중 대기업 대출이 13조원 가량으로 크게 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라도 중소기업 대출은 이전보다 10조원 이상 늘었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이 증가한 것은 간단하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자 유동성이 부족해진 기업들이 은행을 찾은 영향이다.

정부 역시 은행에 "일시적인 유동성 악화로 건실한 기업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달라"며 적극적인 대출 지원을 주문했다. 최근에는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지원하는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은행 역시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다"며 적극 지원했다.

코로나19 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제하고 살펴보면 어떨까? '생산적 금융'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첫번째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다. 정부는 그동안 가계대출이 증가하는 주요인인 부동산대출을 옥죄고 금융사에 신 예대율 규제를 도입하는 등 가계대출을 강하게 억제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경우 인센티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양적으로는 중소기업 대출을 늘렸지만, 최대한 안전한 대출만 취급하려는 성향이 짙어졌다.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의 보증 혹은 담보가 있는 경우에만 대출을 취급했다. 주요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중 80% 이상은 이러한 대출이었다.

이같은 비판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동산담보대출 활성화' 정책을 펼치며 담보가 없더라도 성장세만 있으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유도했지만 동산대출 활성화 성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오히려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기술금융'의 표현만 달리한 것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정책방향이 옳아도 금융사들의 실행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경제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위해 관련 자본·유동·영업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주고 있다. 이런 규제완화가 뒷받침되자 은행들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옥죄기' 위주의 정책의 효율이 낮다는 것을 시사한다.

은행들 또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은행들은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기 때문에 자금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심화, 일본과의 경제분쟁 등으로 수출기업들의 체감경기는 크게 나빠졌고 이로인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애초 전망치를 크게 하회한 2.0%까지 떨어졌다.

올해초 은행들은 "지난해 우량한 중소기업의 대출 증가세가 이어져 대출자산이 증가했다"고 자평했다. 은행들은 '성장성 있는 기업을 적극 발굴했다'는 평가를 하고 싶겠지만 기업들은 '리스크가 적은 기업에만 집중했다'로 받아들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정부와 은행 모두 '생산적 금융'을 실행하는 듯 보여도 실제 내용은 엇박자가 났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충격을 완화하는데 집중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비상 상황은 그동안 취약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와 금융당국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현장에서는 규제만 걱정해야 하는 엇박자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산적 금융 정책에 '채찍과 당근'이 함께 이뤄졌다면 은행 역시 '몸사리기'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중소기업 대출에 나서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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