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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첨병들]'R&B황제' 꿈꾼 엄친아 도전기

  • 2020.11.10(화) 14:45

임현서 탱커펀드 대표, '부동산계 넷플릭스' 구상

지난달 31일 어슴푸레한 새벽 임현서(30) 탱커펀드 대표가 춘천행 전철(ITX 청춘열차)에 몸을 실었다. 춘천기계공고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다. 딱 열흘 공부했다고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너무 만만하게 여긴 건 아닐까. 1~2년을 공부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숱한 시험이다.

"한숨도 못잤어요. 내일이 시험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책임을 지는 거죠. 책임을 지려고…."

임 대표가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 시험준비 동영상에는 피곤이 잔뜩 묻은 얼굴로 이렇게 자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러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엄친아'로 불린 그는 구독자 7만명을 거느린 유튜브계의 '인싸'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고 내년 2월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을 앞뒀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을 말하는 것일까. 임 대표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탱커펀드는 직원수 27명의 스타트업이다. 대학시절 과외로 모은 돈을 쏟아부었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미국에 '질로우(Zillow)'라는 회사가 있어요. 온라인으로 부동산을 중개하는 곳인데 나스닥에 상장돼있습니다. 시가총액이 우리돈 20조원이 넘습니다. 졸업할 때 골드만삭스 같은 외국계 금융기관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기왕이면 질로우 같은 회사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2006년 미국 시애틀에서 탄생한 질로우는 1억1000만개가 넘는 주택 정보를 제공하는 부동산계의 넷플릭스 같은 회사다. 집을 사고 팔거나 임대를 할 때 꼭 둘러보는 사이트다. 매월 수백만명이 방문한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한 건 탱커펀드를 한국판 질로우로 키우기 위한 전초작업 성격이 짙다.

"질로우는 부동산을 직접 사서 보유한 뒤 수요자에게 팝니다. 우리나라에선 취득세 때문에 불가능한 사업모델이죠. 하지만 직접중개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분야입니다. 시험도 중개업 진출을 염두에 두고 본 것이구요. 부동산중개법인을 세워 접근하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임현서 탱커펀드 대표는 한국판 질로우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질로우는 시가총액 20조원이 넘는 부동산 플랫폼이다.
임현서 탱커펀드 대표는 한국판 질로우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질로우는 시가총액 20조원이 넘는 부동산 플랫폼이다.

임 대표의 도전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으로 시작해 지금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 부동산 자동심사 시스템을 공급하는 솔루션 회사로 키웠다. 길게는 며칠이 걸리던 부동산 담보대출 심사가 3분이면 완료된다.

탱커펀드가 P2P업체 등 비은행권에 공급한 솔루션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세를 산정하는 기능도 들어있다. 질로우의 주택평가모델인 '제스티메이트(Zestimate)'와 비슷하다. 실거래가, 매물정보, 경매 낙찰가부터 아파트 브랜드, 교육환경, 건설허가 정보 등을 토대로 인공지능이 시세를 예측한다. 임 대표는 "실거래가격과 인공지능이 예측한 가격의 오차율이 3% 안팎으로 매우 정교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4월에는 부동산정보앱 '집집'을 선보였다. 급매로 나온 아파트를 클릭하면 인공지능이 실거래가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지, 얼마만에 팔릴 가능성이 있는지를 이용자들에게 알려준다. 금융기관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게 B2B 모델이라면 집집은 B2C 모델이다.

"탱커펀드는 더는 P2P 업체가 아닙니다."

임 대표가 깜짝 놀랄 선언을 했다. P2P는 탱커펀드가 안정적으로 운영해왔던 사업이다. 지금까지 700억원 이상의 대출을 취급하면서 단 한 건의 원금손실도 발생하지 않았다. 제2의 출발을 해야할 시기라고 느낀 걸까. 그에게선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했다.

"지난 8월부터 P2P 신규취급을 중단했습니다. P2P업계의 사건사고가 아무래도 은행을 상대하는 영업에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구요.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성장성이 큰 분야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매각을 고려 중입니다."

임 대표는 설립 초기 컴퓨터서버를 담보로 대출해줬다가 떼일 뻔한 일과 파주 재건축 현장에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자금을 회수한 사례, 서울 종로 소재 건물을 담보로 10억원을 빌려줬다가 소송까지 간 일화 등을 풀어냈다. 그는 "살아남으려다 보니 어떻게든 되더라"며 "그 덕분에 쟁송절차는 한 번 보면 전체 그림이 그려질 정도는 됐다"며 웃었다.

회사경영부터 로스쿨, 방송출연, 유튜브 제작까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중학생 때 그의 꿈은 'R&B 황제'였다. 지금까지도 노래는 누구에게 꿇리지 않는 실력을 지녔다. 2016년 '슈퍼스타K'에서 부른 '엄마카드'라는 노래로 유명세를 탔고 올해 초에는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회사일 언제 하냐고 걱정하실 수 있는데 업무량 자체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유튜브는 취미죠. 그래도 '어, 그 회사가 저 사람이 하는 회사구나'라고 알아주면 고맙구요. 지금의 활동이 탱커펀드라는 공동체를 지켜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해줄 거라 믿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로 연결되는 날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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