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보장범위만 넓히면 안심이라는 착각

  • 2021.06.01(화) 09:30

생존담보 복층설계의 필요성

아무도 내일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미래 사고를 대비하는 금융상품인 보험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확률 때문이다. 보험사는 과거의 사고 발생 통계를 바탕으로 미래의 위험률을 예측하여 위험 인수의 대가인 보험료를 산출한다. 따라서 위험률이 높은 약관의 경우 비례하여 보험료가 비싸다. 또한 보험사 입장에서 손해율 악화가 예상되기에 인수 한도가 낮은 경향이 관찰된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기존 계약을 분석하고 점검할 때 고민해야 할 지점이 생긴다. 

가입 중인 보험을 다룰 때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는 보험 모집 시장이 포화하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산모들이 임신 22주 전에 자녀보험을 태아형으로 가입한다. 또한 다수의 사람이 사망 후 가족을 위해 사망보험금을 남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관용적 표현을 보험산업에 적용하면, '태중에서 무덤까지'란 말로 모집 시장의 포화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피보험자를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매일 신계약이 체결되는 이유는 기존 계약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리모델링(remodeling)'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보험은 하나의 상품에 가입하여 이를 평생 유지하기 보단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가상승에 따른 보장자산의 가치하락, 삶의 방식의 변화, 법률과 약관 개정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한 번 가입한 보험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과거의 계약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신계약을 체결해야 모집 수수료가 발생하는 구조에서 기계약을 무조건 해지시키는 부작용이 속출하지만 보험 소비자도 무턱대고 해지를 강요하는 설계사를 반기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자나 피보험자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기존 계약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자주 사용되는 기준은 '보장범위와 금액'이다.

먼저 보장금액은 가입 중인 계약에서 사고 발생 시 청구할 수 있는 보험금을 사고 처리 예상 비용과 비교하는 기준이다. 사고 처리를 위한 비용보다 보험금이 적다면 사고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기에 이를 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암과 같은 중대 질병은 직접 치료비뿐만 아니라 치료기간 중 생활비 등 간접치료비도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암의 진단 시 청구할 수 있는 보험금이 적으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에 진단비 증액 등의 대안이 제시된다.

다음으로 보장범위는 면부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오래된 계약의 진단비를 살펴보면 급성심근경색이나 뇌출혈을 보장하는 약관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사망원인에서 심장질환은 2위, 뇌혈관질환은 4위를 차지할 만큼 중대한 질병이다. 그런데 2018년 보건의료빅데이터를 살펴보면 급성심근경색은 전체 허혈성심장질환 중 11.4%, 뇌출혈은 전체 뇌혈관질환 중 9.7%에 그친다. 이 때문에 비교적 근래 등장한 허혈성심장질환 진단비 또는 뇌혈관질환 진단비 등 보장범위가 더 넓은 약관을 권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보장범위가 넓은 약관을 선택함에 있어 주의할 점이 있다. 뇌출혈과 급성심근경색이 기타 뇌혈관질환 또는 심장질환에 비해 발생 확률은 낮지만 발생 시 예후가 심각하여 치료비 등이 더 많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보장범위가 넓으면 위험률이 높기에 보험료가 비싸고 보험사도 큰 금액을 인수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계약 체결만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좁은 보장 범위만을 부각하여 기존 뇌출혈이나 뇌졸중 그리고 급성심근경색 진단비가 포함된 계약을 해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후 보장범위만 넓힌 신계약이 체결된다.

이는 보장범위 측면에서 볼 때 사고를 넓게 보장하여 보험금 청구 확률을 높인다. 하지만 보장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치료비 등이 많이 필요한 질병 발생 시 충분한 보험금을 확보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보장범위가 넓은 뇌혈관질환 진단비나 허혈성심장질환 진단비의 경우 보험료 부담이 크고 가입 한도도 적다. 하지만 최근 신계약을 살펴보면 높은 금액으로 가입된 뇌출혈 진단비를 해지하고 뇌혈관질환 진단비로 전환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보장 범위가 넓어지는 장점은 있지만 뇌혈관이 터져 신체마비 등 심각한 예후가 관찰될 확률이 높은 뇌출혈에서 보험금이 충분치 않아 제대로 된 재활치료 등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보장범위라는 한 기준만 가지고 기존 계약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설명하는 설계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진단 영역의 컨설팅은 예후가 더 심각한 질병코드에서 더 큰 보험금이 나오도록 보장을 복층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기존 뇌출혈 진단비나 뇌졸중 진단비를 무조건 해지할 것이 아니라 유지한 상황에서 뇌혈관질환 진단비 또는 수술비를 추가하는 것이다. 특히 보장범위가 좁은 뇌출혈 진단비 등은 인수 금액도 높고 보험료도 저렴하다. 하지만 신계약만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생존담보의 복층 설계와 같은 고민은 사라진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피보험자의 급감은 예정된 미래다. 따라서 보험 산업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기존 계약을 다루는 올바른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과거 계약이 부정되고 신계약을 위한 단일 기준만 강요될 때 소비자 피로는 극심해진다. 이는 곧 시장의 급격한 축소 내지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계약 리모델링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할 시기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