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부문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한 후 금융당국이 '조치명령권'을 발동했습니다. 지난해 사모펀드 사태 당시에도 거론됐던 조치명령권은 무엇일까요.
씨티은행의 단계적 철수 방침을 밝힌 후 이를 보류하고 재매각에 나서거나 금융당국의 인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요. 금융위원회는 금융당국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인가가 필요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소비자 불편 불보듯, 꼼꼼히 체크 의지
지난 27일 금융위는 씨티은행에 대한 조치명령을 의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치명령권은 말 그대로 금융당국이 금융사에 대하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인데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49조제1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 및 건전한 거래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은행 등에게 필요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상품 판매업자 등의 경영 및 업무개선, 영업의 질서유지, 영업방법, 금융상품에 대해 투자금 등 금융소비자가 부담하는 급부의 최소 또는 최대 한도 설정, 금융소비자의 권익보호 또는 건전한 거래질서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등이 포함됩니다.
이번 조치명령권 발동은 금소법 시행 이후 첫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금소법 시행 이전에도 조치명령권이 검토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해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당시인데요.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대해 투자자 보호 및 펀드 관리와 운용 공백 방지를 위해 조치 명령을 의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외에는 부동산신탁회사의 대주주 변경과 관련해 조치명령을 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흔한 사례는 아닙니다.
이번과 달리 당시 조치명령권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지만 취지와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치명령권은 2007년 증권거래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활용되지 않으면서 사문화됐는데요. 발동 기준 자체가 포괄적인 만큼 권한 남용이 우려되면서 그만큼 보수적으로 운영해왔고 2017년 3월 사유와 절차 등을 규정화했지만 여전히 활용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결국 조치명령권을 실제로 발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심각함을 의미하는데요. 금융위는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단계적 폐지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불편 및 권익 축소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고 봤다고 밝혔습니다. 단순히 가능성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예견되고 자체적인 관리계획을 마련해도 충분히 문제가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씨티은행이 소매금융 매각에 성공했다면 고객들은 가입 상품이 타 금융기관으로 이관되는 단순 작업만 거치면 됐지만 단계적 폐지로 가입 상품을 직접 해지하고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커졌습니다.
씨티은행은 현재 보유 계좌와 상품은 계약만기 또는 해지 전까지 기존과 동일한 서비스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대출 고객의 경우 긴 상환 일정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고 만기 연장도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만기가 긴 장기대출의 경우 만기 이전에 지점이 사라질 수 있고 대출자 입장에서는 상환 주체가 불명확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씨티은행이 고객불편을 최소화하고 소비자 권익 보호와 건전한 거래 질서 유지를 위한 상세한 계획을 충실히 마련해 금감원장에게 제출하도록 했고 씨티은행도 소비자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씨티은행은 폐지 상품 및 서비스가 무엇인지, 각 서비스와 상품 중지 내용 및 시기, 만기시 처리 과정을 설명해야 하고 금리와 수수료, 부가서비스 등 기존 계약의 거래조건과 운영계획을 밝혀야 합니다.
기존 계약을 해지하거나 타사 이전 권유와 유도 시, 영업점 운영계획 및 점포 폐쇄 시 ATM기기 및 콜센터 확충 운영 등 이용자 보호방안도 마련하게 됩니다. 단계적 폐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유출과 금융사고 예방 등 내부통제 운영 계획도 제출해야 합니다.
은행업 폐업 아닌 만큼 인가 요건 안돼
금융위는 조치명령권 발동과 함께 씨티은행의 소매금융 폐지가 은행법 상 인가 대상인지에 대해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는데요. 씨티은행이 기업고객 영업을 유지하면서 은행업 폐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은행법 제55조에 따르면 은행이 분할 또는 합병, 해산 또는 은행업 폐업, 영업의 전부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양수의 경우 인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매출은 67%에 이르지만 주요 자산 총액으로 따지면 68조6000억원 가운데 소매금융 부문은 20조8000억원으로 30.4%에 불과합니다.
금융위는 파산 등 해산에 준하는 영업 폐지만을 인가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조치명령권 같은 다른 법적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폐업 인가 대상으로 볼 실익이 분명치 않다고 판단했는데요. 법률자문단과 법령해석심위원회 위원들 모두 인가대상으로 보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최근 수차례 거론됐던 과거 HSBC의 단계적 철수 사례에서도 11개 지점 중 10개 지점이 폐쇄되면서 외은지점 폐쇄 인가는 받았지만 은행법 상의 폐업 인가는 받지 않았습니다. 외국은행의 국내지점 폐쇄 인가와 은행업 폐업 인가는 별개의 제도이며 영업대상 축소는 명시적 인가 근거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금융위는 최근 인가 여부가 쟁점화된 것을 의식해 향후 법 개정을 통해 은행의 자산구성 또는 영업대상 변경 등을 인가대상으로 할 필요는 없는지 검토할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이 밖에 업계에서는 콜롬비아 씨티은행이 2016년 소매금융 매각이 여의치 않자 매각을 유보한 후 2년 후 재추진을 통해 매각에 성공한 사례를 들어 단계적 폐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매각 여부와 시기는 은행의 자율적 판단사항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게다가 콜롬비아 씨티은행의 경우 매각 추진 당시 매수의향자가 이미 존재했었기에 2년간 추가 협의를 통해 매각이 가능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