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은행과 중국은행은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이사와 가사대행, 집수리, 심지어 성묘와 방역 등 각종 생활 편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수수료를 얻는 것은 물론 무료상담을 통해 금융상품 판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유초은행은 술과 야채 등 지역특산물을 발굴해 지역생산자 대신 역내외로 판매하는 지역상사를 운영 중이다. 은행이 위탁수수료와 입점수수료를 직접 챙기면서 유통업에 진출한 셈이다.
국내 은행들은 엄두도 못내는 이런 풍경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역시 불가능했다. 하지만 2018년 은행법이 개정되면서 계열사를 통해 8개까지 비금융 업무 수행을 허용하면서 가능해졌다.
지난해 말에는 은행 업무범위 확대와 출자 규제 완화로 은행 계열사를 통해 디지털과 지역경제 활성화,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비금융 사업 영위도 가능해졌다. 내년 중 개정안이 통과되면 은행 계열사가 아닌 은행 자체적으로 은행앱과 IT 시스템 판매, 데이터 분석, 인재 파견 등의 업무가 가능해진다.
앞선 일본 외에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비금융을 넘나드는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BNP파리바의 경우 2013년벨기에 자회사 BNP파리바 포르티스가 벨기에 통신사업자 벨가콤과 합작사를 설립해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했고 다수의 은행들이 참여하고 있다.
BNP파리바는 'LyfPay'란 브랜드로 소매점과 레스토랑 할인이나 세일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했고 자동차 관련 사업 플랫폼, 아프리카 지역 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즈는 기업가 지원 프로그램과 고객의 중요 서류를 보관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내놨고 스페인 BBVA의 경우 데이터 판매 서비스인 '커머스 360'를 통해 중소 소매업자들에게 소비자 트렌드 분석이나 마케팅, 판촉활동에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앱을 선보였다.
국내 역시 비슷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다. 이달 말 신한은행이 자체 배달 중개앱을 출시하고, KB국민은행은 리브엠을 통해 이미 알뜰폰 사업에 진출해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금융당국의 혁신서비스 허용으로 가능한 것으로 금융사들이 비금융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금융사들의 부수업무를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은행의 다양한 사업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승범 위원장은 은행업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은행이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를 위한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밝한 바 있다.
부수업무는 금융업의 고유한 업무나 고유업무로서 겸영이 가능한 업무가 아닌 업무로 정의된다. 이를테면 은행업의 대표적인 고유업무는 여수신이나 외환관련 업무다.
이미 은행이나 보험 등 주요 금융사들은 신규 부수업무를 신고할 수 있고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한 한시적 운영이 가능하지만 관련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실제로 신청도 가뭄에 콩나듯 했다.
신규 부수업무를 영위하려고 할 경우 사전에 신고를 해야하는데 심사 시 고유업무와의 관련성을 지나치게 고려하면서 시도조차 쉽지 않은 환경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부수업무 빗장을 확 풀려는 데는 이미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은행들 역시 플랫폼 확장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부수업무 제한이 자칫 금융사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빅테크와 핀테크들이 금융사업에 속속 진출하며 은행들의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들은 해묵은 규제로 손발이 묶이면서 적극적인 방어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이런 환경이 지속될 경우 은행 경영지표 악화는 물론 은행의 존립까지도 문제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결국 플랫폼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비금융과의 접목이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고 위원장은 은행이 겸영 및 부수업무 확대 검토와 함께 금융권과 빅테크간 규제 차익 발생이 없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금융사들의 비금융 업무가 확대된다면 예대마진 위주의 수익모델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금융업무와 다양한 시너지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