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금 무이자' '중도금 이자 후불제'
'분양가 9억원 이상 중도금대출 금지'
중도금 대출(집단대출)은 분양단지 계약자들에게 내 집 마련 징검다리다. 목돈 마련을 위해 직접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받지 않아도 건설사가 연결해준 은행을 통해 대출이 가능하고 마지막 잔금을 치르기까지 이자만 부담하면 되는 까닭이다.
중도금 대출도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 등과 마찬가지로 시장금리를 기반으로 은행이 산출한 금리를 적용한다. 하지만 최근 중도금 대출 금리를 두고 일부 분양 사업장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분양시장 침체와 금리 인상기가 겹치면서 계약자들이 같은 단지임에도 은행마다 다른 중도금 대출 금리를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건설사와 은행들은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계약자들의 볼멘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건설사는 계약률 높이고, 은행은 대출자산 확대
분양단지 계약자들은 아파트가 준공될 때까지 통상 6번 정도의 중도금을 납부 한다.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 사업장(문재인 정부는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 위해 분양가 9억원 이상 주택 중도금 대출을 금지했는데, 현 정부는 올해부터 관련 규제를 없앴다)이라면 계약자는 중도금을 내기 위해 개별적으로 은행을 찾아가 직접 대출받아야 한다.
이 경우 집단대출로 나가는 중도금 대출에 비해 금리도 높고, 기존 신용대출 등이 있는 차주라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규제로 인해 대출한도도 제한적이다.
중도금 대출은 건설사가 시중은행들과 계약을 맺고(보증을 서고) 계약자들에게 대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행들이 건설사 보증과 사업성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만큼 개인이 대출받는 것보다 금융 부담이 훨씬 덜하다.
이를 통해 건설사들은 계약률을 높일 수 있다. 최근처럼 미분양이 늘고 분양시장이 위축된 시기에는 중도금 무이자, 중도금이자 후불제 등의 문구를 분양단지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 계약자들이 부담할 이자를 건설사들이 대신 내주는 것으로 건설사들이 수익 감소를 감수하고 계약률을 높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은행들은 분양사업장에 중도금 대출을 제공함으로써 손쉽게 대출자산을 늘릴 수 있다. 이자이익이 은행의 주된 수익원인 만큼 성장을 위해선 대출자산 증대가 필수적이다. 분양사업장에서 계약자들에게 중도금 대출을 해주는 것은 의무가 아닌 건설사와 은행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은행이 중도금 대출 참여를 결정할 때는 분양단지 입지와 건설사 브랜드 등 사업성 등이 주요 고려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대출 금액이 커질수록 부담해야 할 리스크도 확대돼 사업장마다 대출 총액도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대형 사업장에는 여러 은행이 중도금 대출 제공 은행으로 참여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건설사 브랜드 경쟁력과 신용도, 분양단지 사업성 등에 따라 중도금 대출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며 "대형 분양사업장의 경우 한 은행이 모든 중도금 대출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 여러 은행이 중도금 대출 공급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금리 산정 어떻기에?
중도금 대출 금리도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각 은행의 경영 환경 등을 반영한 가산금리 등을 통해 은행이 자체적으로 산정한다. 의무가 아닌 만큼 은행이 정한 금리에 간섭할 수 없다.
가령 은행마다 중도금 대출 금리가 달라 계약자들이 불만을 표출한 용인 '힐스테이트 몬테로이'의 경우,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6개월)를 기준으로 하지만 산정방식이 다르다. 국민은행은 전체 대출금액 약정 시기를 기준으로 6개월 단위 변동금리 형태인 반면 우리은행은 중도금 대출이 발생하는 시기마다 금리를 새로 산정해 적용한다.
▷관련기사: [단독]같은 아파트, 옆 동 중도금대출은 더 싸다고?(2월10일), "중도금대출 금리 달라 수백만원 손해"…은행·건설 "네 탓"(2월11일)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 발생 때마다 금리를 새로 산정하는 방식은 금리 변동을 빠르게 반영하는 게 특징"이라며 "금리 인상기에는 인상 분이 바로 반영되기 때문에 차주들의 부담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지만 인하기에는 그 반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만 커지는데…건설사‧은행, 책임 떠넘겨
최근 계약자들 사이에서 금리 불만이 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으로 은행들 대출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도 치솟았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지난해 1월 1.64%에서 12월에는 4.29%로 1년새 2.65%포인트 뛰었다. 12월 코픽스 금리가 전달보다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1년 기준으로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금리 인상이 빠르게 반영되는 구조로 금리를 산정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차주는 더 많은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계약자들은 은행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2곳 이상 은행이 참여하면 통상적으로 건설사들은 동과 라인에 따라 은행을 배정한다. 같은 사업장이어도 은행마다 대출 한도가 다른데, 이 한도를 최대한 맞추기 위한 조치라는 게 건설사들의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같은 단지 안에서도 평수와 타입 등에 따라 분양가가 다른데 그나마 같은 동, 같은 라인이 분양가 차이가 크지 않다"며 "이를 기준으로 배분해야 은행마다 다른 대출한도 금액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자들이 은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대출한도를 맞추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분양시장 침체도 계약자들의 심적 부담을 더하는 요인이다. 미분양 단지가 속출하고 일부 단지에선 마이너스 피까지 발생하고 있어서다. ▷관련기사: 위험수위 넘은 미분양…'악성'도 조만간 급증 우려(1월31일)분양시장 열기가 뜨거울 때는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고, 당시에는 기준금리가 0.5% 대의 제로금리 수준이어서 대출금리 부담도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계약자들은 분양시장 침체에 대한 부담과 고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증가 등 이중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는데 건설사와 은행 그 어느 곳도 직접적인 책임을 지기 어렵다는 데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과 관련한 사안은 대부분 관행대로 진행돼왔고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최근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논란이 발생한 만큼 금융당국이 중도금 대출과 관련해 명확한 지침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