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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지주 내 위상 예전 같지 않네

  • 2024.02.27(화) 09:40

이승열 하나은행장, 지주 등기임원 조기 사임
행장 '2인자' 인식…과거 지주회장과 힘겨룰 정도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 속 비은행 위상 강화

금융지주 내 은행장의 위상이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그간 은행장은 금융지주 핵심 계열사의 수장인만큼 사실상 그룹 내 '2인자'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위상이 꺾이는 분위기다. 

이는 금융지주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경영승계 과정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는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은행의 수익성은 점점 고착화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지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비은행 계열사가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데다, 금융지주의 경영승계와 CEO후보군 관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녹아 있다고 보고 있다. 

영원한 2인자는 없다?

지난 21일 하나금융지주는 이승열 하나은행장이 하나금융지주 등기임원(비상임이사)자리에서 퇴임했다고 공시했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한 이후 같은해 3월 하나금융지주 비상임이사에 선임된 바 있다. 이승열 행장의 하나금융지주 등기임원 임기는 내년 3월까지로 아직 임기가 1년 가량 남아있지만 조기 사임한 셈이다. 

주요 은행계 금융지주들은 대부분 은행장을 지주 내 등기임원으로 선임, 이사회의 일원으로 그룹 최고 의사결정에 참여토록 한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역시 이재근 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지주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조병규 은행장이 지난해 주주총회 이후 은행장 자리에 올라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이원덕 전 행장은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는 그만큼 은행의 그룹 내 위상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이승열 행장이 등기임원 자리에서 조기 사임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측은 사임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이례적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은행장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해석 나온다. 

금융지주 이사회 한 관계자는 "은행장이 등기임원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발언권이 사실상 매우 작은 수준으로 이사회 내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굳이 은행장이 이사회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비은행으로 무게추 쏠리나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 은행장 경험이 없는 양종희 회장을 선임한 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금융권에서는 당시 KB국민은행장을 지낸 허인 전 KB금융지주 부회장이 유리한 위치라고 예상했지만 이를 뒤집고 KB손보 사장을 지낸 양 회장이 최종 낙점됐다.

그동안 은행장이 그룹내 2인자인 동시에 차기 후계구도에서 유리하다는 공식을 깬 것이기도 했다.

이는 금융지주들의 후계 승계 구도에도 드러나 있다. 최근 몇년간 금융지주들은 주요 회장 후보로 꼽히는 인사들을 지주 내 핵심 사업영역을 전담하게 하면서 지주 전체를 아우르는 경험을 쌓도록 하고 있다. 굳이 은행장 경험이 없더라도 CEO 육성 프로그램에서 관리되던 인사라면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것이 일부 금융지주들이 운영하던 부회장 직이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부회장직이 사실상 폐쇄적인 경영승계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면서 부회장직을 폐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기 회장 최우선 후보군은 지주 내 핵심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들이라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금융권에선 이같은 흐름이 금융지주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관계가 깊다고 해석하고 있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은행은 금융지주 수익원의 70%, 많게는 90%의 순익을 홀로 책임지며 버팀목 역할을 했다.

최근 들어서 금융지주들은 은행에 기댄 수익 포트폴리오 개선을 위해 비은행 계열사의 경쟁력 강화에 힘써왔다. 이 과정에서 은행장의 위상이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낮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은 연초 그룹의 주요 과제로 비은행 계열사 경쟁력 확대를 주요 과제로 콕 집었고,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도 취임 이후 비은행 계열사 강화를 연일 외치고 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은행은 수익성이 이미 고착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지주 전체의 경쟁력은 은행이 아닌 비은행에 달렸다는게 금융지주들의 공통된 시각"이라며 "자연스럽게 그룹에서 은행에 기대하는 바가 예전보다 줄었고 은행장의 위상도 달라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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