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수장들이 비상계엄 뒷수습을 위해 해외 투자자, 외국 금융기관들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민간 금융사들도 당국 요청에 따라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금융시장 안정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불성립된 이후 국내 금융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대내외 신인도 추락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민·관 할 것 없이 총력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노력이 완충 작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치리스크를 해소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비해 금융사와 기업들은 환율 변동성에 대응하고 금융당국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에 대비, 채권시장 대응 및 플랜 B 마련에도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다.
금융당국·금융권도 총력 대응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금융당국 수장들은 비상계엄 사태 후 매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일명 F4 회의, 최상목 부총리·김병환 금융위원장·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이복현 금융감독원장) 회의를 갖고 금융·외환시장 동향과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우리 경제 펀더멘털이 견조하고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확대되는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은 대외건전성에 비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는 10일 회의에서도 우리 외환시장은 세계 9위 수준이라는 점을 짚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해외 시장에 우리 금융·외환시장 시스템 안정성을 알리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전날 5대 금융지주 회장(KB·신한·하나·우리·NH농협)들을 만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투자자와 대상으로 대외신인도 관리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날에는 국내 금융사 CFO(최고재무책임자)들을 만나 현안 관리를 주문하고, 외국계 금융회사 대표들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또 야마지 히로미 일본 증권거래소그룹 대표를 만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외국계 금융사 대표들에게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지만 경제는 부총리 등 경제팀을 중심으로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시장 안정을 위한 준비태세는 확고히 유지되고 있고 주요 정책 과제도 계획된 일정대로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은행 국제금융담당임원 간담회와 외국계은행 간담회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글로벌 IB 애널리스트,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나 우리 시장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복현 원장은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금융 상황 점검 TF가 가동돼 경기·민생 전반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 중에 있고 경제분야 문제 해결은 재정·통화·산업·금융정책 간 적절한 조합으로 경기 하방리스크에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 신뢰 제고를 위해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밸류업 프로그램, 외환시장 선진화와 WGBI 편입 등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과제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금융지주들도 해외 시장 관리에 나섰다. KB금융은 캄보디아에서 NBC 감독국장과 국내 상황을 공유하고 이슈 발생에 대한 지속적인 소통을 약속했고, 싱가포르 통화청과 시장 현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주요 글로벌 투자자에게 서한을 발송해 현 상황에 대한 설명과 밸류업 방안의 이행을 강조했다.
하나금융은 미국 하나은행 뉴욕지점, 유럽 영국 런던지점, 독일 법인 등에서 해당국 관계부서(혹은 기관)에 국내 금융상황에 대해 보고했다.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서한 발송 뿐 아니라 대면·비대면을 통해 국내 금융시스템 회복력에 대해 적극 소통한다는 방침이다.
신한금융과 우리금융도 해외 투자자 대상 컨퍼런스콜과 밸류업 이행 계획 추진 약속, 외화유동성 추가 확보 등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미봉책'…자금조달 안정 집중해야
금융시장에선 금융당국의 이 같은 노력을 두고 시장 변동성 확대 폭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치 리스크가 해결돼야 하지만 무대응보다는 시장과 소통하는 게 그나마 낫다는 의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당국이 시장과 적극 소통하고 잘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시장을 방치하는 것보다 안정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은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현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0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1원 내린 1426.9원, 코스피 지수는 2.43% 오른 2417.84로 마감하며 전일보단 안정화되는 모습이지만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탄핵 정국 대치로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우리나라 국가 신용도와 해외 투자자들의 원화 자산 선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도 정책 결정 효율성과 경제적 성과 혹은 재정이 약화되면 신용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여전히 해외에선 국내 금융시장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다.
황세운 실장도 "근본적인 방안은 당연히 정치 불확실성의 신속한 제거"라며 "투자자가 다시 시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의 해외 네트워크 활용은 당국을 지원하는 수준이지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라며 "현 상황에 대비한 모니터링 강화 등에 역량을 집중하며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금융사와 기업들은 환율 변동성에 적극 대응하고, 금융당국은 주식보다 채권시장 안정화에 집중해 기업 자금조달을 지원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환율 변동성이 커 금융사나 기업들은 환차손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신용평가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에도 대비해 조달비용 상승과 대외 공급선 이탈 등을 대체할 수 있는 '플랜B' 마련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증안펀드를 가동해도 주식시장 매수세가 워낙 약해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채안펀드를 활용한 조달시장 안정으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