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개혁이 좌초 위기에 몰렸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비급여·실손보험 개편을 논의하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활동이 올스톱돼서다. 보험제도를 관장하는 금융당국은 시국과 무관하게 실손보험 개혁안을 내놓을 입장이다. 하지만 근본 대책인 비급여 개혁이 빠진 반쪽짜리에 그칠 거란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16일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제5차 보험개혁회의'는 실손보험 개혁안은 별도 후속 보도자료를 통해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개혁 기조는 확고히 유지돼야 한다"며 "보험개혁회의 과제들을 당초 계획과 일정에 따라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손보험에 대해서도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 핵심과제인 만큼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당초 실손보험 개혁안은 연내 발표가 예고됐다. 정부는 비급여·실손 개선, 의료사고 대응 강화 등을 담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발표를 계획했다. 오는 19일 공청회를 열어 연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비상계엄을 계기로 △대한병원협회 △대한중소병원협회 △국립대학병원협회 등 주요 의료단체들이 줄줄이 의개특위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향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은 개혁안 발표를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업계는 반신반의 상태다. 실손보험은 이미 수차례 크고 작은 구조 개선이 있었지만 '만년 적자' 꼬리표가 붙은지 오래다. 보험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급여 진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4개 대형 손보사가 올해 1~8월 지급한 실손 보험금은 5조4820억원으로 이중 비급여 항목이 59%(3조2279억원)다. 비급여 보험금은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피부과·한방병원·정형외과를 중심으로 한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비급여 주사 치료 등이 대표적이다.▷관련기사 : [실손24 출시]③전산화가 끝? "보험금 누수 막을 제도 개편"(10월29일)
그간 복지부와 금융위는 치료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 진료를 '관리급여'로 지정해 환자 치료비 부담을 높이고 치료 횟수를 정해 이를 넘어서면 진료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비급여 관리와 규제가 의료계와 협의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결국 다시 실손보험 구조만 바꾸는 반쪽짜리 개선안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본인부담금을 다시 높이고 비급여 한도를 엄격히 설정한 새 실손보험 상품이 거론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의 기준과 가격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손보험을 정상화 할 수 없다"며 "필수의료 붕괴와 의료비 증가를 막을 실손보험 개혁이 최악의 상황을 맞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