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의 생명보험사 인수(M&A)가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금융감독원이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통해 인수 과정에서 절차가 미흡했다고 지적하는 한편, 부당대출과 내부통제 부실 등을 대거 적발하면서 경영실태평가 '3등급'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보험업계에선 중국 안방보험그룹이 국내 시장을 떠나려는 만큼 이번 딜의 성사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기업과의 거래가 무산되면 여파가 커질 수 있어서다. 조단위 보험사를 인수할 만한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우려 요인 중 하나다.
금감원이 이달 중 경영평가 결과를 최종 확정하고 금융위원회에 송부하면 공은 금융위가 넘겨 받는다. 금융당국 결정에 우리금융 뿐 아니라 보험권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M&A 절차 지적한 금감원…짙어진 먹구름
금감원은 4일 우리금융 정기검사에 대한 중간 발표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관련 부당대출를 비롯해 내부통제 부실 등이 드러났다. 이 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M&A 인수 과정에서 절차가 부족했다고 지적한 내용이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후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장에 주력했다. 자본비율 하락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동양·ABL생명 인수를 위한 1조5493억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어 지난 달 15일 금융위에 자회사 편입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관련기사: 우리금융의 '운수 좋은 날'…축배 대신 고개 숙인 임종룡(2024년 8월28일)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M&A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 준수가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지주 회장이 외형 확대 치우쳐 과도한 경영목표를 제시하고 임직원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 이사회 절차 등을 경시했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특히 임종룡 회장이 자회사 M&A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개최되기 전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했고,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개최해 위원회 심의 내용이 이사회 안건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 지적이다. ▷관련기사: 금감원 '매운맛' 이유 있었네…2300억 부당대출 우리금융 위기(2월4일)
우리금융이 생보사 인수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자회사 편입 승인 등 금융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간발표 이전부터 금감원이 우리금융을 향해 지속적으로 날선 비판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로서는 전망이 어두운 게 사실이다.
생보사 인수에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경영실태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달 중 경영평가 결론을 내고 금융위에 송부, 3월에는 금융위가 우리금융이 제출한 자회사 편입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관련기사: 이복현 금감원장 "우리금융 경영평가 결과 2월 중...원칙적 처리"(2월4일)
이에 대해 금융위는 신중한 입장이다. 앞서 지난 달 2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절차에 따라 심사할 것이고 (금감원) 검사결과도 중요한 포인트"라며 "등급 등 결과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인수 무산되면…동양·ABL 누가 사나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를 두고 보험업계 전망도 엇갈린다. 현 상황에선 금감원 정기검사 결과를 보면 인수 허가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반면 중국 기업과의 거래로 M&A 불발에 따른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중국 안방보험이 국내 시장을 떠날 것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1조5000억원이 넘는 보험사 매물을 인수할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이다.
보험권 M&A 시장에는 롯데손해보험과 MG손해보험, KDB생명 등 굵직한 매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각 보험사들의 높은 몸값과 이를 소화할 기업들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M&A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예금보험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MG손해보험 매각도 우선협상대상자(메리츠화재)를 선정했지만 MG손보 노조 반발 등의 이유로 진척이 더디다.
이런 가운데 동양·ABL생명 주인찾기가 불발되면 이들 역시 M&A 시장에 남는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 생보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본도 얽혀있어 국내에서 두 보험사(동양·ABL생명)를 인수해야 하는데 금융지주가 아니면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금융지주에 인수되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금융당국이 고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에 대한 금감원 검사 결과는 부정적이지만 보험사 매물이 시장에서 소화돼야 하는데 우량한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