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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쇼크]위태로운 산업...약값 잡으려다 사람 잡는다

  • 2025.12.03(수) 12:30

매출원가 높아, 약값 낮추면 수익성 타격
저렴한 원료 구매, 품질 리스크로 이어져

정부가 제네릭(복제의약품) 약가를 크게 내린다고 예고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제네릭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를 감안하면 기업의 수익성뿐만 아니라 의약품 공급 안정성, R&D 투자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약가제도 개편이 불러올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해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옥석 가리기와 구조조정.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으로 제약 업계에 거센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형 제약사는 그나마 살아남겠지만 수익성 악화에 버티지 못하는 소형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제약 기업들 대부분이 수익성 자체가 낮다. 위탁개발생산기업(CDMO)과 비급여 의약품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제외한 국내 제약기업 100곳의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하다. 

약가 인하, 고정비 부담 커진다

제네릭(복제약)은 원가·고정비 비중이 높다. 원료의약품 비용, 제네릭 허가 필수 요건인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시험) 비용, 제조·품질관리, 공장 운영비, 유통비 등은 약가가 내려가더라도 쉽게 줄일 수 없는 '고정성 비용'이다. 쉽게 말해 매출 100원 중 매출원가가 95원, 영업이익이 5원이라고 가정하면(이익률 5%) 약가가 20% 하락해 매출이 80원으로 줄어도 고정비는 변동이 없어 15원의 영업적자를 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대형 제약사의 고민도 깊다. 국내 상위 제약사들은 제네릭부터 개량신약, 해외 도입약까지 여러 제품군을 조합하는 멀티 제품 전략과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동물의약품 등 다각화된 사업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상위 제약사들 가운데 제네릭 매출 비중이 30~50%에 이르는 기업도 적지 않다. 약가가 대폭 낮아지면 제네릭이 담당하던 안정적 현금흐름이 무너지고, 이에 따라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대형사도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산 라인 축소 또는 외주 생산 확대를 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비용 효율화를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 기반이 약화되고 특정 품목 공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제네릭 중심 소형 제약사는 비용 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하기 어려운 만큼 폐업하는 곳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고 대형사들도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영업조직 및 생산 라인을 축소하거나 외주 생산을 맡기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이는 결국 제약업계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약 R&D 저해 및 공급난·품질저하 등 우려

제네릭 약가 하락이 신약 R&D(연구개발)에 미칠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내 제약기업 상당수는 제네릭 사업에서 확보되는 안정적 현금을 혁신신약 개발의 '종잣돈'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약가 인하로 제네릭의 캐시카우 역할이 약화되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R&D 예산을 조정하거나 고위험·장기 프로젝트 대신 단기 수익 중심의 사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의 질과 개발 속도가 떨어지고, 지난 10여 년간 쌓아온 한국 제약산업의 혁신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에서도 약가 규제와 R&D 사이의 연관성을 다룬 다양한 연구들이 있는데, 규제 방식에 따라 영향은 다르지만 급격한 약가 하락은 혁신 인센티브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정부가 신약 개발 촉진이라는 정책 목표를 내세우더라도, 지나친 약가 인하는 오히려 기업들의 R&D 투자 의지를 꺾어 정책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공급 불안정·품질저하 등 환자 피해도 우려

소비자 입장에선 약값이 싸지면 좋다. 낮아진 약가로 약값 부담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말이 달라질 수 있다. 의약품 공급 불안정과 품질 저하라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폭적인 약가인하 정책이 자칫 환자와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제조사는 원가를 맞추기 위해 국내보다 저렴한 중국·인도산 원료의약품을 쓸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품질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과거 2019년 고혈압치료제 성분 '발사르탄'과 위장약 성분인 '라니티딘'의 중국산 원료에서 발암 우려 물질이 검출됐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다수 제약사 제네릭이 시장에서 대규모로 퇴출됐고, 환자들은 복용 중단과 대체 약 전환을 반복해야 했다.

이후에도 수입산 원료의 불순물 검출 문제가 연달아 발생하며 수입산 원료 품질에 대한 불안이 확대되자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됐다. 이 같은 사례는 원가 절감을 위해 품질 관리 역량이 낮은 공급처에 의존하게 될 때 환자들이 어떤 직접적 피해를 입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경고 신호로 꼽힌다.

수익성 악화에 '허가취소→공급중단' 리스크로 환자 피해

약가 인하로 제약사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품목 허가를 자진 취소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고, 이는 곧 공급 중단 리스크로 이어진다. 특정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환자 수는 그대로인데 품목 수가 줄어들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환자들이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대규모 약가 인하 정책을 지속한 결과, 일부 제네릭 제조사의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GMP 투자 축소, 생산 중단이 잇따랐다. 그 여파로 2020년 이후 다수 품목에서 장기적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결국 국가적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미국 보건당국과 의회는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도 공급망은 취약해진다' 구조적 문제를 공식 보고서에서 여러 차례 지적해 왔다. 미국은 초기 제네릭 약가는 높지만 후발주자들의 등장으로 경쟁이 심화될수록 가격이 급격히 낮아지는 구조적 문제로 일부 필수 주사제·항암제 분야에서 제조사 철수와 반복적인 품절 문제가 발생해왔다. 

국내 산업계는 과도한 약가인하가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부가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재검토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의 골든타임인 지금 이 시점에서 추가적인 약가인하는 기업의 연구개발 및 인프라 투자, 우수 인력 확보 등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수입의존도 증가, 필수 의약품 공급 차질, 품절 리스크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는 개선방안의 확정에 앞서 산업계의 합리적 의견 수렴과 면밀한 파급 효과 분석을 바탕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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