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현대제철 3.0]②'용광로 쇳물'시대 열다

  • 2015.07.08(수) 18:13

한보철강 인수로 고로 사업 초석 다져
일관제철소 성공적 마무리..32년만의 꿈 이뤄

현대제철이 하이스코를 합병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꿈꿔왔던 철강업을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완성했다. 현대제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철강에서 자동차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아울러 이제 국내 철강업계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포스코를 견제할 대항마로 성장했다. 글로벌 철강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대제철의 성장 과정과 향후 과제 등을 짚어본다.[편집자]
 
세번의 좌절을 맛봤던 현대그룹의 제철을 향한 도전은 마침내 지난 2010년에 빛을 발했다. 그해 1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고로에서 생산된 첫 쇳물은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지난 32년간 품어왔던 꿈이 현실이 됐음을 의미했다. 아버지의 실패를 곁에서 지켜보며 제철 사업의 성공을 다짐했던 그의 집념이 이뤄낸 결과였다. 
 
고로를 통한 쇳물 생산은 단순히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정 회장은 쇳물부터 자동차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꿈꿔왔다. 당진제철소에서의 쇳물 생산은 현대차그룹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이다. 정 회장이 그 오랜시간 고로를 통한 쇳물 생산에 집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 제철사업 포기는 없다

정부의 반대로 번번히 고배를 마셨지만 정몽구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0년 강원산업을 인수했다. 이어 삼미특수강도 가져왔다. 강원산업은 석탄 채굴·가공 업체다. 당시 강원산업은 경영 악화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상태였다. 정 회장은 이런 강원산업을 현대그룹으로 편입시켰다. 고로 사업을 위한 준비였다.
 
스테인리스 냉연강판을 생산하던 삼미특수강(현 현대비앤지스틸) 인수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 회장은 이미 일관제철소 사업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기회가 오면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였다.
 
그의 이런 의지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2000년 정부는 국내 대기업들에게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현대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는 현대그룹에게 제철사업에서의 철수를 요구했다. 위기였다. 자칫하다가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제철사업이 물거품이될 수도 있었다.
 
▲ 지난 2001년 있었던 포철과의 '핫코일 전쟁'은 정몽구 회장이 제철사업에 대한 의지를 더욱 확고히하는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이때 묘안을 짜냈다. 일단 현대강관과 인천제철을 매각하고 제철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강원산업을 인천제철과 합병한 후 2001년 계열분리된 현대차그룹에 편입시켰다. 현대강관도 현대차그룹에 넣었다. 정부의 요구에 따라 현대그룹은 제철사업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정 회장이 계열분리된 현대차그룹으로 옮겨가면서 제철사업도 자연스럽게 가져갔다.
 
정 회장이 얼마나 제철 사업을 지키려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회장의 제철에 대한 의지는 지난 2001년에 있었던 포철과의 '핫코일 전쟁' 이후 더욱 강해졌다. 당시 포철은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생산하고 있던 현대강관에 공급과잉을 이유로 냉연강판의 재료인 핫코일 공급을 거부했다. 일종의 견제였다.
 
이에 정 회장은 포철이 이렇게 나온다면 값싼 일본제 핫코일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그리고 일본 가와사키제철에 지분 13%를 양도하고 핫코일을 장기 조달키로 하는 내용의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정 회장은 이때 포철이 국내 철강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설움을 제대로 맛봤다.
 
◇ 한보철강 인수로 고로 사업 초석

2004년 마침내 정 회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한보철강이 매물로 나온 것이다. 한보철강은 당진에 제철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제철소 건설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부도가 나면서 매물로 나왔다. 정 회장은 이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생각했다. 그동안 제철업 진출을 위해 조용히 준비해왔던 역량을 한꺼번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당시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전기로로 쇳물을 생산하고 있었다. 정 회장이 생각했던 고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규모가 컸다. 현대차그룹 철강사업의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한다면 포스코만큼은 아니지만 전기로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이후 고로 사업을 진행할 때도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 정몽구 회장은 매물로 나왔던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에 성공한다.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는 정 회장이 꿈꿔왔던 일관제철소로 가기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이었다.
 
정 회장은 계열사인 INI스틸(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포스코도 눈독을 들이고 있던 매물이었다. 정 회장은 과감한 인수 전략을 폈다. 다른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인수 금액을 높게 불렀다. 결국 한보철강은 그해 10월 현대차그룹에 합병됐다. 정 회장이 오랜기간 준비해왔던 제철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정 회장은 일단 계열사를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운영을 계획했다. 그는 당진공장에서 INI스틸은 철근과 열연강판을, 현대하이스코는 냉연강판을 생산토록 했다. 아울러 정 회장은 한보철강 당진공장의 조속한 정상화에 전력투구했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정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제 자리를 찾아갔다. 고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당진공장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 회장은 마침내 오랫동안 품어왔던 쇳물에서 자동차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에 대한 구상을 공개했다. 그는 "자동차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냉연강판 등 품질 좋은 철강재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고품질 철강 제품 생산을 위해 고로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당진공장 인수로 고로 사업 진행을 위한 토대를 갖췄다고 판단했다. 당진공장 인수는 제철 사업 실현에 한 걸음 다가서는 초석이 됐다.
 
◇ 32년만에 이룬 꿈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인수한 지 2년이 지난 2006년은 정 회장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정 회장은 2006년 마침내 제철사업권을 획득한다. 아버지 때부터 염원했던 고로 제철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착실하게 준비해왔던 것을 비로소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정 회장은 2006년 INI스틸의 사명을 현대제철로 바꾼다. 현대제철은 아버지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의 제철사업에 대한 염원을 담아 생전에 미리 지어놓은 것이다. 정 회장은 그해 10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제철소 건설에 나선다. 740만㎡(224만평) 부지에 연산 400만톤 규모의 고로 3기를 설치키로 했다. 투자금액만 10조원에 달했다.
 
정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 당시 수시로 건설현장을 방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정 회장은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시간이 날때마다 헬기를 타고 불시에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건설현장 곳곳을 직접 누비며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거나 조금이라도 소홀한 기미가 보이면 담당 임원이 수시로 문책을 당했을 만큼 정 회장의 당진 제철소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 지난 2010년 1월 5일 정몽구 회장은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1고로에 첫 불을 당겼다. 아버지로부터 그에 이르기까지 32년간 준비해왔던 '제철'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공사를 진행한 지 4년만인 2010년 정 회장은 고로 쇳물의 꿈을 이룬다. 그는 그해 4월 제철소 준공과 함께 1고로에 불을 당기고 첫 출선을 지켜봤다. 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제철 사업 시작을 위해 인천제철을 인수한지 32년만에 거둔 성과였다.
 
1고로의 안정적인 생산에 자신감이 붙은 정 회장은 일정을 앞당겨 그해 11월 2고로도 완성한다. 2013년에는 3고로까지 완공하면서 현대제철은 연산 1200만톤의 종합제철소로 거듭났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초로 쇳물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기업이 됐다. 아울러 단숨에 글로벌 철강업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막대한 건설비가 들어가는 고로의 보유 여부는 철강사의 우열을 가르는 잣대다. 철강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고로를 이용해 쇳물을 뽑는 회사는 사명에 '제철(製鐵)'을 붙인다. 지금은 이런 기준이 많이 희석됐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런 원칙은 엄격했다. 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철’을 생산한 것으로 여겼다. 정 회장은 32년만에 '진짜 철'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