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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왕' 폭스바겐의 몰락..현대·기아차에 기회?

  • 2015.09.23(수) 16:35

미국서 매연저감장치 조작..후폭풍 '일파만파'
'판매 부진' 현대·기아차, 반사이익 전망

국내 자동차 시장에 '디젤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폭스바겐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폭스바겐이 내세웠던 '고연비'가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면서 후폭풍을 맞고 있다. 폭스바겐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고연비' 디젤 차량으로 큰 인기를 얻은 브랜드다. 그런만큼 업계에서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폭스바겐의 파문으로 다른 유럽 브랜드도 판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메르세데스-벤츠, BMW의 주가도 동반 급락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과거 도요타 사태와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도요타 사태 때 반사이익을 거뒀던 현대·기아차가 이번에도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폭스바겐, 무엇을 왜 조작했나

이번에 문제가 된 '2.0 TDI 엔진'은 폭스바겐의 대표 엔진이다. 폭스바겐이 글로벌 시장에서 '디젤 명가(名家)'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그동안 폭스바겐이 대대적으로 내세웠던 '고연비 친환경' 엔진의 전형이 바로 '2.0 TDI'엔진이다. 업계에서도 폭스바겐의 '2.0 TDI'엔진은 수작(秀作)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폭스바겐이 내세웠던 '고연비 친환경'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규제가 강한 미국의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매연저감장치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연 측정 당시에는 매연저감장치가 작동하도록 하고 일반 주행시에는 이 장치가 꺼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이 이처럼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통상적으로 연비와 배기가스량은 반비례한다. 즉 매연저감장치를 장착하면 엔진의 토크와 가속력에 부담을 준다. 따라서 연비는 나빠진다. 그래서 각 자동차 업체들은 친환경적이면서 고연비 엔진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폭스바겐의 '2.0 TDI 엔진'은 두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했다. 업계에서 폭스바겐의 '2.0 TDI 엔진'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폭스바겐 본사. 폭스바겐을 비롯해 아우디,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포르셰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한 폭스바겐그룹은 이번 매연저감장치 소프트웨어 조작 사태로 소비자 신뢰도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실제로 드러난 '2.0 TDI 엔진'의 민낯은 폭스바겐의 자랑과는 정반대였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조사에 따르면 폭스바겐 '2.0 TDI 엔진'은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NOx) 농도가 미국 환경기준보다 많게는 40배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겉으로는 매연저감장치를 작동시켜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했다가 실제로는 이 장치를 꺼 연비를 높이는 '꼼수'를 부려왔던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 EPA는 48만2000여대의 폭스바겐 디젤 차량에 대한 리콜 명령을 내렸다. EPA는 향후 최대 180억 달러(약 21조2400억원)의 벌금도 부과키로 했다. 미국 법무부는 형사소추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독일 정부도 별도로 조사에 나선 상태다. 폭스바겐은 빈터콘(Winterkorn) 회장이 직접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또 미국 내 디젤차량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약 8조원의 충당금도 쌓기로 했다.

하지만 조작 후폭풍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폭스바겐의 주가는 지난 21일 하루에만 18.6% 하락했다. 7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이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가운데 141억 유로(약 18조5746억원)가 증발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시장에서 폭스바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 국내 도입 모델은?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은 국내에서 판매된 폭스바겐 모델들도 조작된 것 아니냐다. 미국에서 조작으로 적발된 모델은 폭스바겐 비틀·제타·골프·파사트, 아우디 A3 등이다. 비틀을 제외한 나머지 모델들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들이다.

현재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폭스바겐코리아 측은 소비자들의 쏟아지는 문의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 측은 "현재 미국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만큼 어떤 입장을 밝히기가 곤란하다"고 말한다. 
다만 한국에서 판매된 모델들은 미국에서 판매된 모델들과 달리 유럽에서 제작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 폭스바겐 골프 2.0 TDI. 폭스바겐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자 환경부도 국내에 시판된 폭스바겐 모델에 대해 전면 재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폭스바겐코리아는 국내에 시판된 모델은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 제작된 모델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한국에서 시판된 모델들도 조작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 출시된 차량들은 대부분 ECU(Electronic Control Unit)이라는 전자장치로 엔진을 제어한다. ECU는 자동차의 엔진, 자동변속기, ABS 등의 상태를 컴퓨터로 제어하는 전자제어 장치다. ECU를 통한 조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폭스바겐 사태가 확산되자 환경부도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환경부는 다음달 초 폭스바겐 골프, 제타, 비틀, 아우디 A3 등 4개 차종에 대해 배기가스 재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통관절차를 마친 신차를 대상으로 실제 주행 상태에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작동에 문제가 있는지 정밀 검사할 계획이다. 배출가스 저감 장치의 조작이 확인될 경우 리콜이나 판매중지 명령도 내린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적발된 만큼 미국보다 배기가스 기준이 낮은 한국에서 판매된 모델들도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환경부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조작 여부를 떠나 폭스바겐의 국내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 현대·기아차, 반사이익 거둘까

업계에서는 이번 폭스바겐 사태가 경쟁업체들에게는 판매 확대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외에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차로서는 이번 사태가 호재라는 분석이다. 지난 2010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 당시 현대·기아차는 반사이익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지난 2010년 판매량은 도요타 리콜 사태 덕에 전년대비 23.8% 증가했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내수와 해외 모두에서 판매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작년 글로벌 판매 800만대를 돌파했지만 올해 목표치인 820만대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환율 변동과 업체간 경쟁 심화로 성장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따라서 현대·기아차로서는 이번 사태를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시장에서도 현대·기아차에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중국, 일본, 미국과 달리 승용디젤의 비중이 큰 시장이라 이번 사건의 여파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며 "수입차 대비 열세였던 디젤 라인업을 차례로 갖춰가고 있는 국내 브랜드의 선전을 전망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 업계와 시장에서는 이번 폭스바겐 사태로 현대·기아차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심각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차에게 폭스바겐의 몰락은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라는 분석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도 "높은 디젤 엔진 기술력이 폭스바겐 브랜드 인지도의 근간인 만큼 이번 이슈로 브랜드 가치의 하락이 예상된다"면서 "승용 부문에서 경쟁 중인 현대차와 기아차의 반사이익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도요타 사태 당시에는 현대·기아차와 도요타가 경합을 벌이는 부분이 많았지만 폭스바겐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박영호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폭스바겐은 도요타만큼 미국 시장에서 한국차와 경합을 벌이는 제조사가 아니다"라며 "이번 리콜에 따른 효과가 도요타 리콜 때만큼 크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의 조작과 리콜 사태는 분명 현대·기아차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디젤 차량의 선두 주자였던 폭스바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유럽 업체들도 함께 동반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이 틈을 잘 파고든다면 현재의 판매 부진을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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