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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한국GM '밑빠진 독' 된 이유

  • 2018.02.21(수) 14:42

[격랑의 한국GM]
15년치 재무제표와 함께 본 성쇠(盛衰)

# '르망'을 기억하십니까?

 

'로얄 살롱, 로얄 프린스' 이런 차까지 떠오른다면 당신은 한국GM의 전신, 옛 대우자동차를 좀 아는 '아재(혹은 아줌)' 맞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언니 성보라가 타고 나온 차가 대우차 르망이었습니다. 르망은 1986년 출시돼 1997년 2월 단종 때까지 10년8개월동안 내수 판매 53만6254대, 수출 51만6099대 등 총 100만대 넘는 판매를 기록한 히트 모델이었습니다.

 
▲ 르망 신문광고 (자료: 인터넷 아카이브)
 

대우차가 생산하고 미국 GM이 해외판매를 맡은 '월드 카' 프로젝트로 탄생한 르망 전성기에 대우차 내수 점유율은 30%를 찍었습니다. 이후 '티코', '씨에로', '에스페로' 등이 명맥을 이었던 대우차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한 축이었습니다.

 

한때 세계 완성차의 15%를 생산한 거대기업 제네럴모터스(GM)는 옛부터 대우차와 인연이 깊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차량 수리업체였던 신진공업사가 일본 토요타와 합작하면서 신진자동차로 변신했는데 1971년 철수한 토요타 지분을 받은 게 GM이었습니다.
 
그러나 GM은 오일쇼크 여파로 지분을 산업은행 등으로 넘겼고 그 후 신진차 지분을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이 차츰 인수해 1983년 만들어진 게 대우자동차입니다. GM은 기술 우위를 앞세워 1992년까지 대우차 경영에도 깊이 간여하는 등 인연이 얽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우차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때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법정관리를 거쳐 팔리는 신세가 됐고, 결국 2002년 과거 사업 파트너였던 GM으로 넘어갔습니다. 어찌보면 재결합으로 'GM대우'가 탄생한 겁니다.

 

이를 이어 받은 한국GM이 굴곡진 15년 영업끝에 지금은 완전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습니다. 여러 생산기지 중 군산공장 폐쇄를 내걸고 정부 지원을 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GM의 성쇠는 재무제표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회계 장부에 쓰인 숫자들과 함께 한국GM 15년의 궤적을 들여다 봤습니다.

 

# 달콤했던 허니문

 

허니문은 꽤 달콤했습니다. "한국 근로자들 애사심과 기술력은 세계 최고다. 한국 생활은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우차 인수과정을 총괄했고, 2002년 10월 GM대우 출범과 함께 사장직을 맡은 닉 라일리 사장이 약 4년 임기 마치고 떠나며 한 말입니다.

 

▲ 닉 라일리 초대 GM대우 사장(사진: 한국GM)

 

당시 뉴욕타임스는 "실패한 대우 브랜드가 GM의 희망이 되고 있다. GM대우는 GM이 진행한 인수합병(M&A) 중 최고 성공사례"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GM대우는 3년만인 2005년 대우인천차 공장을 추가 인수하고 2002년 총판매량 41만대에 불과했던 걸 2005년에 115만대(반조립제품·CKD 포함)까지 늘렸습니다. 이듬해엔 대우차 시절 정리해고됐던 직원 1700여명을 전원 복직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초기 성과는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2003년 4조7400억원이었던 매출은 2006년 10조원을 넘어 이듬해 13조9374억원까지 늘었습니다. 2004년만해도 2793억원이나 된 영업손실은 이듬해 흑자로 전환에 성공했고 2007년 영업이익은 6008억원까지 늘었습니다.

 

이런 실적과 함께 자동차 업계서도 GM대우가 확실히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차를 구매하는 일반인들도 안심했습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순이익도 잇달아 5000억원대를 기록했습니다.

 

# 금융위기 그리고 '키코' 일격

 

 

하지만 호시절은 길지 않았습니다. 2008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가 GM대우에도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 해 GM대우는 출범후 최대인 190만5088대의 차를 팔아 14조7623억원의 매출을 냈는데, 영업이익은 전해 반토막 수준인 3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특히 순손실이 무려 8891억원이나 났습니다. 원흉은 GM대우가 환헤지를 위해 들어놓은 키코(KIKO, 통화옵션상품)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당시 산업은행 주변에 유독 키코 손실이 컸습니다. 산업은행은 당시 GM대우 지분 20%를 쥐고있던 2대주주입니다.

 

2008년과 2009년 재무제표에는 파생상품 평가 및 거래 손실액이 각각 2조3303억원, 8201억원으로 적혀 있습니다. GM대우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296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 때문에 순손실 3296억원을 냈습니다.

 

자회사 GM대우 적자 때문은 아닙니다만, 금융위기는 GM 미국 본사도 뒤집어놨습니다. 옛 GM은 2009년 6월 미국 정부에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구조조정과 19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새 GM이 탄생했습니다. 새 GM은 정부 지원으로 살아났다고 해서 '거버먼트(Government) 모터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 몸집 불린 뒤 버려진 '대우'

 

▲ 쉐보래 브랜드 교체를 발표하는 마이크 아카몬 GM대우 사장(사진: 한국GM)

 

파생상품 손실 일격에 출혈이 컸지만 GM대우는 다시 외형을 키웠습니다. 2009년 11조원대로 꺾였던 매출은 이듬해 13조9618억원, 그 다음해 16조5708억원으로 늘었고 2012년에는 역대 최대에 근접하면서 18조원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이렇게 늘어나는 동안 영업이익은 오히려 꺾였습니다. 2009년 296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이듬해와 그 다음해 2755억원, 2366억원으로 줄었고, 2012년에는 오히려 1831억원 영업손실이라는 적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뺀 사업 수익성 지표입니다. 그런데 2009년 86.6%였던 매출원가율은 2011년 87.8% 수준까지 유지되다가 2012년에는 91.4%로 높아집니다. 판매관리비는 2009년 1조2000억원대였던 것이 2011년과 2012년 각각 1조7779억원, 1조74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명에서 대우를 떼 버리기로 한 결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2011년 GM대우는 현재의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꾸고 브랜드도 '쉐보레'로 통합 정리했습니다. 쉐보레 브랜드 사용료가 더해지고 브랜드 교체에 따른 추가 비용과 활용 마케팅 지출이 늘어나면서 매출원가율도, 판매관리비가 전체적으로 늘어난 겁니다.

 
 

대표적인 게 판관비 중 '광고선전비' 항목입니다. 브랜드 교체 전인 2009년과 2010년 3000억원대였지만 2011년과 2012년에는 5140억원, 4578억원 등으로 급증한 게 두드러집니다.

 

당시 마이크 아카몬 GM대우 사장은 "새 브랜드 전략은 한국시장에 전념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임과 동시에 한국이 글로벌 GM의 전략적 요충지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우'라는 이름과 특유 엠블렘이 부도기업 이미지가 있어 판매에 부정적이라는 내부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 마지막 불꽃 2013년..그리고

 

한국GM의 2013년 재무제표는 유독 화려했습니다. 일단 매출은 18조3783억원이라는 '커리어 하이(역대 최대)'를 찍었습니다. 매출원가율은 86.4%로 낮추고, 브랜드 교체 뒤 매출 대비 판관비 비중도 8.6%(1조5724억원)으로 줄이면서 영업이익은 9262억원,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는 1조원을 넘기는 쾌거를 거둡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GM의 실적은 곤두박질 칩니다. 어떤 이유였을까요? 판매 실적을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잡힙니다.

 

안방 시장에선 좋았습니다. 2013년 국내에서는 당시 최대였던 15만1040대를 팔아 내수점유율을 2007년 후 가장 높은 수준인 9.8%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후로도 내수 판매는 2016년 18만275대를 기록할 때까지 점점 늘었습니다.

 

▲ 한국GM 군산공장 크루즈 조립라인(사진: 한국GM)

 

하지만 주력인 수출은 한 해 앞선 2012년 최고점을 찍은 뒤 꺾인 것이 눈에 띕니다. 완성차 수출은 62만9478대로 2011년 이후 2년 연속 감소세가 나타났고  반제품(CKD) 수출도 118만5080대로, 역대 최대였던 2012년 127만5123대에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완성차와 CKD를 포함한 전체 수출량은 2013년 196만5598대에서 해마다 165만대, 141만대, 126만대, 작년 약 107만대까지 매해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이는 GM 본사의 대대적 글로벌 사업 재편과 관계가 있습니다. GM이 유럽,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시장에서 줄줄이 철수하고 계열사 오펠 등을 매각하면서 한국GM 주력인 수출 물량이 급격히 감소한 탓입니다.

 

# 재연된 '한국 철수' 카드

 

2013년 정점을 이룬 뒤 이듬해부터 내보인 한국GM 실적은 알려진대로 처참합니다. 우선 매출이 2014년 14조2797억원, 2015년 12조1398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아직 결산이 마감되지 않은 작년의 경우 판매량을 감안하면 매출 10조원도 위태롭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매출원가율도 90~96% 수준을 오가면서 흑자 구조를 깼습니다. 결국 영업손익도 2014년부터 적자가 났습니다. 2016년까지 1193억원, 7049억원, 5219억원 영업손실을 잇달아 기록해 3년간 총 1조3461억원에 달하는 누적 손실을 냈습니다.

 

순손익은 더 심한 적자입니다. 2014년부터 3년간 각 3332억원, 9930억원, 6194억원 순손실이 났습니다. 영업손실에 매년 2000억원 가까운 영업외 손실이 더해진 결괍니다.

 

여기는 2013년 이후 더해진 이자 증가가 배경이 됐습니다. 한국GM은 2012년과 2013년 1조5000억원을 들여 산업은행이 보유한 우선주을 매입했는데, 이 돈은 GM본사가 연 5% 안팎 금리 조건으로 내준 차입금입니다. 이 비용이 순손실을 키운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GM이 한국GM을 상대로 '고리대금' 장사를 해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밖에도 부품·제품 거래 과정에서 한국GM이 손해를 보고 이익을 본사나 해외 GM 계열사에 몰아줬다거나, 매년 수천억 대 연구개발비용을 본사에 지불한 것,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을 한국GM에 대도록 한 것이 경영난 가중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현재 GM 본사는 한국GM '군산공장 철수'라는 카드를 던진 뒤 이달 말까지 답을 내놓으라며 정부 지원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높은 인건비, 낮은 생산성 때문에 한국 사업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유섭 의원에 따르면 GM은 ▲유상증자 참여 ▲자금 지원 ▲담보 제공 ▲외투지역 지정 등 크게 4가지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약 1조원 가량되는 지원 규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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