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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2018.08.17(금) 09:20

'물컵 갑질' 논란을 일으키고 지난 4월 말 사퇴한 조현민 전 대한한공 전무(진에어 부사장 겸직)가 올해 상반기 중 대한항공과 진에어 두 회사에서 총 17억4280여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두 계열사에서 퇴직금으로 받은 돈만 12억9220여만원이다. '임원퇴직금 지급규정에 따라 퇴임당시 월평균보수, 직위별 지급률(4개월 내) 및 대한항공 근무기간 7.5년(진에어 6.5년)을 고려해 지급한 것'이라는 게 한진그룹 두 항공사 설명이다. 아다시피 한진그룹 총수는 그를 막내딸로 둔 조양호 회장이다.

 

조 전 전무는 그 월급만 따져봐도 대단했다. 퇴직금과 상여금 등을 제외하고 주기적 월급 성격의 급여만으로 대한항공서 1억6918만원, 진에어 1억7300만원 등 총 3억4218만원을 받았다.

 

상반기에 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6개월 내내 일한 급여도 아니다. 조 전 전무는 지난 4월16일부로 대기발령됐고, 엿새 뒤인 22일 부친 조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모든 직책에서 사퇴했다.

 

그러니까 넉넉히 잡아 올해 4개월을 근무했다고 봤을 때, 월급으로 따져보면 각 항공사에서 4300만원 안팎, 총 8555만원을 받은 것이다. 그가 30대 중반임을 감안할 때 일반인 동년배 연봉 수준을 뛰어넘는 금액을 매월 받고 일했던 거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가 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던 계열사는 더 있다. 다시 말해 한진칼, 정석기업, 한진관광, 칼호텔네트워크, 싸이버스카이 등에서 받은 보수는 빠져있다는 얘기다. 이들 계열사는 임원 보수 공개 대상이 아니어서 조 전무가 여기서 받은 보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처럼 그가 적을 둔 전체 계열사에서 받았을 보수를 감안하면 조 전 전무의 월 수령액은 1억원은 훌쩍 넘었을 걸로 가늠할 수 있다. 이런 대우는 그가 총수 일가였기에 가능했다. 한진에 평생을 바쳐 '기업의 별'이라 부르는 중역까지 간 베테랑 임원도 꿈 못 꿀 보수였다.

 
1983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통합커뮤니케이션실장, 동남아 등 여러 지역본부장을 거치며 임원만 11년 넘게 한 이 모 전무의 경우 퇴직금 6억3630만원, 마지막 월급은 3500만원 대였다. 역시 35년 근무 경력에 임원만 13년 넘게 한 김 모 전무 경우 퇴직금은 8억9300여만원, 마지막 월급은 4000만원 남짓이었다.

 

▲ 물컵 갑질 후 포토라인에 선 한진 일가. 왼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아 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굳이 일반 직원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작년 대한항공 직원 1만8330명(평균 근속년수 15.4년)의 평균 급여액은 7138만원, 월급으로 단순 환산하면 595만원이었다. 애초부터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제가 업무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다 보니 경솔한 언행과 행동을 자제하지 못했고 이로 인하여 많은 분들에게 상처와 실망감을 드리게 됐다." 물컵 갑질 사태가 불거진 뒤 조 전무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행동이 일을 잘해보려는 열정 때문이었다는 해명이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는 영화가 있다. 좌충우돌 연예부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 분)'에게 쇠락해가는 스포츠신문 데스크 '하재관(정재영 분)'이 던지는 극 중 대사가 그대로 제목으로 뽑혔다. 패기 있지만 일처리는 서툰 젊은 직원과 노련하지만 젊은 직원들의 기피대상이 돼 가는 간부 직원의 직장생활 속 애환이 우습고도 씁쓸하면서도 결국 공감을 자아내는 전개로 꽤 호응을 받은 영화다.

 

조 전 전무의 보수 내역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열정'이란 단어는 아무나 갖다 쓸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현실에 기반해 동시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그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말이 열정이다. 이 뜨거운 여름, 항공사 직원들이 주말마다 열정적으로 거리로 나오는 이유를, 출발선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그는 알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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