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형 사모펀드 KCGI가 연일 한진칼에 대한 압박 공세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까지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한진그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국민연금이 한진칼 2대 주주인 KCGI의 명분에 찬성하고 힘을 실어줄 경우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은 더욱 수세에 몰릴 전망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지난 1일 제2차 회의를 열고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의결했다. 기금위는 구체적으로 한진칼에 '정관 변경'을 제안키로 했다.
정관 변경 요구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의미한다. 국민연금은 향후 조 회장은 물론 아들 조원태 한진칼 사장에 대한 이사 해임권, 사외이사 추천권, 횡령·배임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 자격을 제안하는 등의 정관 변경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하는 KCGI의 요구 사항과 일치한다. 국민연금의 부인에도 KCGI의 연대 가능성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도 "KCGI의 주주제안 회의 내용은 파악했지만, 기금위는 독자적인 행보를 할 것이고 KCGI에 동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며 KCGI의 연대 가능성에 또 다시 선을 그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현 지분율로는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KCGI와의 동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진칼의 경우 7.34%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KCGI(10.81%)와 연대하면 조양호 회장 일가(28.93%)의 지분차가 10%포인트로 줄어든다.
KCGI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연금의 지분 7.3%를 확보하지 못하면 3월 주총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KCGI가 잇단 주주제안으로 한진그룹을 압박하는 것을 두고 '기금위 시선끌기용' 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KCGI는 한진칼에 대한 압박 공세를 최고치로 끌어 올리고 있다. 지난달 21일 '한진그룹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29일에는 한진과 한진칼의 주주명부 열람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는가 하면, 홈페이지를 통해 뜻을 함께할 주주를 찾는다며 여론전도 펼쳤다.
기금위 2차 회의 전날인 지난달 31일에는 주주총회에서 감사와 사외이사 선임 등을 골자로 하는 주주제안서를 송부, 그 내용을 공개했다. 지분 10.8%를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의 경우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감사 1인과 사외이사 2인을 선임하자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사 선임 등에 있어 KCGI와의 의견차가 있을 수 있지만, 협의를 통해 조율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위원회를 열어 KCGI의 주주제안에 찬반 표결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