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와 지배구조 핵심인 현대모비스가 22일 각각 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가 올린 안건을 모두 통과시켰다. 주주제안을 통해 배당 확대와 사외이사 이사회 진입을 시도한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계획은 전부 무위에 그쳤다.
이번 주총이 현 경영진 측의 완승으로 끝나면서 현대차그룹은 작년 한 차례 시도했다가 접은 지배구조 개편을 다시 추진할 동력을 찾게 됐다는 평가다. 본판을 앞두고 승기(勝氣)를 되찾아온 셈이다.
현대차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양재사옥에서 제51기 정기주주총회를 열어 기말배당 승인,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 등 엘리엇 주주제안과 맞선 안건을 비롯한 모든 안건을 이사회 상정안대로 가결시켰다.
현대모비스도 비슷한 시간 서울 강남구 사옥 인근에서 정기주총을 열어 배당과 사내·사외이사 선임 등을 모두 이사회 발의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현대차 주총에서는 작년 4월 엘리엇이 주주가 된 이후 처음으로 제안한 주총 안건이 다뤄졌다. 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표이사진에 합류하게 되는 절차여서 주목 받았다.
그러나 표결은 싱겁게 끝났다. 배당안부터 그랬다. 현대차 이사회가 제안한 보통주 기준 3000원 현금배당안이 출석주식 찬성률 86%, 전체 의결권의 69.5% 찬성으로 통과했다.
엘리엇이 제안한 주당 2만1967원의 배당안은 부결됐다. 배당안은 주총 전 모든 의결권 자문사들이 엘리엇 고배당안에 반대하고 이사회안 동의를 권고한 바 있다.
의결권 자문사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던 사외이사 선임안도 모두 현대차 이사회 추천 인사 상정안이 통과됐다. 사측 안은 출석주식수 대비 80% 안팎, 전체 의결권 대비 70% 안팎의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윤치원 UBS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유진 오 전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 교수 등 3명이 사외이사로 이사진에 올랐다.
사내이사 선임안 등 엘리엇이 주주제안을 내놓지 않은 안건들도 특별한 이견 없이 주총에서 승인됐다. 사내이사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과 이원희 현대차 사장,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연구개발본부장 3명이 선임됐다.
현대차는 주총을 마치면 이사회를 열어 정의선 부회장을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키로 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정몽구 대표이사 회장, 정의선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이원희 대표이사 사장, 하언태 대표이사 부사장 등 4인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바뀐다.
이외에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안과 현대차 이사회가 엘리엇의 제안을 반영해 상정한 보수위원회와 투명경영위원회 설치안 및 기타 관련 법률 개정에 따른 정관 변경, 이사 보수한도 변경 등 안건도 모두 원안 가결됐다.
엘리엇 측은 표결 전 불리한 판세를 읽은 듯한 기색을 비쳤다.
현대차 주총 전체 의안 상정에 앞서 대리인 법무법인 KL파트너스 정두리 변호사를 통해 "엘리엇은 현대자동차와 대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려는 제안임을 알아달라"는 요지의 설명만 짧게 했다. 제안에 대한 의안별 구체 설명은 하지 않았다.
현대모비스 주총 역시 마찬가지였다. 엘리엇과 맞붙은 배당안은 이사회가 제안한 보통주 1주당 4000원 배당이 찬성률 69%로 통과했다.
신임 사외이사 선임안도 브라이언 D 존스 아르케고스캐피탈 공동대표, 칼 토머스 노이만 전 오펠 최고경영자(CEO) 등 현대모비스 이사회 추천 인사 선임안이 모두 가결됐다. 모두 의결권 주식 총수 대비 70%의 찬성률을 넘겼다.
이사 정원을 '3인 이상 9인 이하'에서 '3인 이상 11인 이하'로 늘리자는 엘리엇의 제안도 부결됐다. 표대결에서 찬성률 21.1%로 특별 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날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총 및 이사회를 거쳐 정 수석부회장은 두 핵심 계열사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명실상부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이번 주총을 통해 향후 지배구조개편을 재추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 구조를 깨고, 최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엘리엇 등 외부 반대 여론에 밀려 계획을 미뤘다.
그러나 이번에 승기를 돌린 만큼 재추진시 성공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작년 이후 여러 차례 기업설명회 등을 통해 올해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