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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아시아나 품은' 정몽규 회장의 책무

  • 2019.11.15(금) 10:03

"부채로 지금까지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았나. 선순환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12일 HDC-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정몽규 HDC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답이다. 아시아나의 막대한 부채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이 있었다. 그는 "항공산업이 전반적으로 어렵다. 아시아나항공 신주를 인수하면 부채비율이 300% 미만으로 내려간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한 직원은 가장 반가운 한 마디로 이 '선순환'을 꼽았다. 몇 년째 누구 좋으라고 일하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던 '악순환'에 지쳤기 때문이란다. 작년 여름 기내식 사태로 회사가 위기에 몰린 와중에 직원들이 시내에 모여 가두집회에 나선 것도 그래서였다고 했다.

기내식 준비를 못해 승객들에게 욕을 먹은 게 억울해서 움직인 게 아니었단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룹 총수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이 그룹 빚을 갚기 위해 망가져온 그 악순환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고 그는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직원 자부심이 대단한 회사였다. 대한항공과 어깨를 겨루던 최초의 순수 국적민항사로 30여년간 우리 항공산업을 발전시킨 공도 상당하다. "국내 항공시장의 독점을 깨 소비자 주권을 확대하고 항공산업 경쟁의 효과를 불러왔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2018년 2월, 당시 김수천 아시아나 사장)는 말은 아시아나 사람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그룹 최고 경영진의 '고위험' 경영의 희생양이 되면서 악순환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계열사 중 가장 똘똘한 아시아나가 그룹을 확장하는 데 담보물로 전락하면서부터 회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이 있다.

2018년 여름 기내식 사태 여파로 거리에 선 아시아나 직원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는 숫자로도 보인다. 아시아나는 2008년까지만 해도 주주 배당을 한 기업이었다. 이익이 충분했다는 얘기다. 그 해 창사(1988년) 이래 처음으로 주주들에게 총 263억원(2006사업연도 결산, 주당 150원)을 나눠줬다. 2004년 이후 3년 연속 거둔 순이익 흑자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이듬해 같은 규모의 배당을 한 후 지금까지 줄곧 무배당이었다.

가장 좋을 때 멍에가 씌워졌다. 금호그룹이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을 인수(2008년 3월)하면서 아시아나가 1조2600억원의 차입금을 들여 자금을 댄 것이 대표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본업이 타격을 입었던 것에 더해, 사업 외적으로 갚아야 할 이자도 불었다. 2008년부터 생긴 결손금은 이번 매각 때까지도 메워지지 않았다. 순차입금은 2015년 말 4조3900억원으로 늘고, 부채비율은 991.5%까지 뛰었다. 부채 악순환의 결과다.

그 뒤에도 아시아나는 줄곧 그룹 재건의 볼모 역할을 했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재인수할 때는 아시아나가 보유한 금호터미널을 지주사로 싸게 넘겼다는 지적이, 금호타이어를 재인수하려 할 때는 기내식 사업권을 내주면서 인수자금을 유치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결국 아시아나는 매물이 됐다.

HDC-미래에셋은 2조원 넘는 신규자금(신주)을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키로 했다. 이를 통해 재무건전성은 확보될 걸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시아나항공이 본업에 집중해 사업적 안정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시아나를 담보로 한 고위험 경영은 금호 날개를 떼며 끝내야 한다.

정몽규 HDC 회장은 '모빌리티 사업'을 얘기했다. 인수 배경을 두고 현대자동차 회장을 역임한 그의 부친 '포니 정' 고(故) 정세영 회장이 거론됐다. 기업가 부친의 염원을 아들이 하늘에서 푼다는 드라마가 온갖 지면을 장식했다. 정 회장 역시 아시아나를 통한 모빌리티 사업에 대해 "여러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HDC에서 항만사업도 하고, 육상·해상·항공사업을 함께 하는 방안을 연구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12일 정몽규 HDC 회장이 아시아항공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하지만 시너지가 본질을 해쳐서는 안 된다. HDC의 이번 인수는 '부동산'에 천착했던 현대산업개발이 '부'자를 뗀 '동산'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선택이다. 그만큼 큰 변화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은 인수에 자금을 투입하는 베팅까지여야 한다. 항공사업을 정상 궤도로 올려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다. 그룹의 사업 확장을 위해 아시아나를 다시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경영 선택은 HDC에서는 없어야 한다.

정 회장이 말한 '선순환에 기반한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성장'이 이제는 시작하기를 아시아나 직원들도, 아시아나를 지켜보는 외부인들도 바란다. 그걸 해 내는 게 새 주인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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