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삼성으로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지 싶다. 이 부회장은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1년 여 수감됐고 재작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대법원이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여전히 재판 중이다. 여차하면 재수감될 수도 있다는 게 삼성과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지난달 17일 4차까지 이뤄진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삼성에 "준법경영 강화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12월6일 3차 공판에서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또 다시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가져오라고 숙제를 냈다. 삼성은 그 답으로 지난 5일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을 위원장으로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숙제를 잘 해오면 처벌에 참작하겠다. 어쨌든 첫 공판에서부터 재판부는 이런 의중을 보여왔다. 당시 재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들어 선진적이고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했다. 연방 양형기준 8장은 실질적인 준법감시제도를 갖춘 기업 구성원의 범법행위에 대해 형을 낮춰주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 달 4차 공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은 준법감시위 설치와 운영 방식을 재판부에 소개했다. 이에 재판부는 "준법감시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면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했다. 삼성과 이 부회장으로서는 '집행유예'라는 빛을 반짝 확인한 한 마디였을 테다. "대법원 판결 이후 커졌던 실형 선고 확률이 처음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법조계 관전평이 나왔다.
#그래서였을 거다. 준법감시위는 5일 연 첫 회의에서 위원회의 권한으로 삼성 권력의 '정점'인 이재용 부회장까지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관계사 최고경영진이 관여한 준법의무 위반행위가 발생했을 때 관계사 준법관련 기구에 조사와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미흡할 경우 직접 조사하고 공표할 수 있다'고 적어둔 것이 그 대목이다.
남은 것은 그 진정성을 가리는 것이다. 재판부가 제시한 요구에 걸맞도록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적, 독립적 운영체계를 갖추는 것이 삼성과 이 부회장의 준법 의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됐다. 이를 위해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제도 도입을 논의키로 하고 오는 14일 공판준비기일을 잡았다.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 삼성 준법감시위는 그 하루 전인 오는 13일에 2차 회의 일정을 잡았다.
#결국 사법부 몫이다. 준법감시위가 삼성과 이 부회장의 반성과 준법의지라는 '진심'을 담았는지, 진심인 듯 '보여주기' 하려는 것에 불과한지 판단하는 일은 오롯이 재판부의 책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양간을 잘 고쳤다고 소를 잃은, 혹은 소를 빼돌린 외양간지기를 어디까지 봐줄 수 있느냐'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고, 답을 해줘야 한다.
2017년 법정구속된 이 부회장이 출소한 게 2018년 2월5일, 꼬박 2년이다. 향후 재판 결과를 떠나 이 참에 '관리의 삼성'이라는 별명을 완전히 떼야 하는 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영속해야 할 삼성의 과제다. 사법부도 수 십년간 그 '관리대상'이었다는 꼬리표를 기어코 끊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재수감을 면하더라도 '삼성이어서 결국 이렇게 됐다'는 찝찝함을 남긴다면 삼성도, 우리 사회도 나아질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