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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의 승계 논란, 더는 없다"

  • 2020.05.06(수) 17:16

승계 문제·노조 논란 등 공식 사과
"새로운 삼성 꿈꾼다" 간접적 지지 호소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차례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나선 대국민사과 발표자리에서다. 기업은 일류지만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 본인 잘못이라며 한 번, 삼성의 무노조 경영 때문에 상처 입은 이들에게 사과하며 또 한 번, 마지막 한 번은 발표를 마치면서였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은 6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는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말로 입장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실망을 안기고 심려를 끼쳤다"고 무거운 심경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기술과 제품은 1류라는 찬사를 듣고 있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이고 저의 잘못"이라며 "사과드린다"는 말과 함께 단상 옆을 나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 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승계 논란, 더는 없다…경영권 물려주지 않는다"

그는 가장 먼저 승계 문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여기에만 대국민사과 발표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고 과거 사건들을 언급했다. 그리고는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며 그가 직접 피고석에 앉고 있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도 입에 올렸다.

그는 준법감시위의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인 듯 "저와 삼성을 둘러싼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고 자인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리겠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며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미래에 대한 의지도 갖게 됐다", "한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간접적으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하지만 위기는 항상 우리 옆에 있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업의 규모로 보나 IT(정보기술)업의 특성으로 보나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며 절박한 위기의식을 역설했다.

또 이 대목에 이어 "많은 인재들이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현재의 경영권에 대한 흔들림 없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에 덧붙여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던 생각이라면서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4대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첫 공식 언급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 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무노조 경영 없다…준법 문화 만들겠다"

승계 이슈에 대한 입장 발표 후 그는 노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또 한번 허리를 굽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반성한 뒤 최근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 서비스 관련 재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의 철저한 준수와 노동3권의 확실한 보장을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시민사회소통과 준법 감시에 대해 "시민사회와 언론은 감시와 견제가 그 본연의 역할이고 기업 스스로가 볼 수 없는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며 "외부의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며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인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다. 그 활동이 중단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장발표 말미에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위기 극복 과정을 꺼내들며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며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 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이 부회장은 이를 마지막으로 10분 간의 발표를 마친 뒤 질의응답은 받지 않고 단상에서 물러났다. 이날 입장 발표는 행사 직전 2~3시간 전에야 장소가 공지되는 등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

삼성그룹 총수가 기자회견 형태로 공식 사과를 한 것은 삼성 역사상 이번이 네 번째였다. 앞서 1966년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과 관련, 2008년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 관련, 2015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감염 관련으로 대국민사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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