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에 꽂혔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발맞춰 필수 소재 동박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어서다. 동박은 재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에서 배터리 용량을 담당하며 전기차에서 핵심으로 꼽힌다. 특히 전기차용 배터리용 동박은 연성회로기판 등 다른 정보기술(IT) 기기에 쓰일 때보다 부가가치가 높다. SK그룹은 동박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해 일찌감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하는 중이다.
반도체와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등 신성장 산업을 필두로 그룹 체질개선을 모색하는 SK그룹은 동박사업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당장 수요가 커지고 있는 동박을 외부에 팔수도 있고, 배터리 사업을 진행 중인 SK이노베이션 등 그룹 내부물량도 소화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서다.
그룹 지주사 SK㈜는 해외기업을 경유해 동박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달 17일 중국 동박 제조사 '왓슨' 지분에 100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SK㈜는 왓슨 보유 지분율이 총 30%에 이른다. 지난해 말 왓슨의 지분율 26% 획득하는데 투자한 금액 2700억원을 더하면 SK㈜는 이 회사에 총 3700억원을 투자하게 된다.
왓슨은 현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CATL 등 여러 글로벌 업체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이 회사는 여기에 더해 2025년에는 생산능력을 연 4만톤에서 3.5배 규모인 연 14만톤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설비 신·증설에 나서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동박 사업에 진출하는 사례도 있다. 그룹 계열사 SKC는 올해 1월 KCFT(현 SK넥실리스) 지분 100%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하며 동박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SK넥실리스는 지난해 10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4마이크로미터(㎛) 두께 초극박 동박을 1.4미터(m) 폭으로 세계 최장인 30킬로미터(㎞) 길이로 양산하는 기술력을 선보이는 등 높은 기술력을 지닌 회사다. 동박은 두께가 얇으면 얇을수록 배터리에 더 많이 넣을 수 있어, 동시에 더 많은 배터리 용량을 담을 수 있다.
SK넥실리스는 동박의 높은 질에 더해 양도 늘리고 있다. 현재 착공 중인 정읍 5공장이 완공되는 이르면 오는 2021년에는 생산능력이 연 4만3000톤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2만4000톤의 1.8배 규모다.
SK넥실리스는 SKC에 합류한 뒤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SKC의 올해 2분기 매출(연결 기준)은 6562억원, 영업이익은 499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7%, 영업이익은 5.7% 늘었다. 이 가운데 SK넥실리스가 모기업 SKC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출(2299억원)은 35%, 영업이익(131억원)은 26.3%에 달한다.
SK넥실리스는 하반기 실적 개선도 예고했다. 최근 유럽 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올리는 등 전기차 수요에 불을 붙이고 있어서다. 김영태 SK넥실리스 대표는 지난 7일 실적 발표회에서 "상반기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등으로 공장 가동률이 이전보다 떨어졌다"며 "유럽 등 전기차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하반기에는 가동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호재는 왓슨과 더불어 SK넥실리스에 날개를 달아줄 전망이다. 전기차가 더 많이 보급될수록 필수 소재인 동박 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용 동박 수요는 올해 13만5000톤에서 5년 뒤인 2025년에 이르면 74만8000톤으로 4.5배 뛸 전망이다.
특히 SK그룹의 동박사업은 미국, 유럽 등에서 대대적 전기차 배터리 설비 신·증설에 나서는 SK이노베이션 '보급 기지' 역할도 기대된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연간 생산능력을 올해 20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100GWh로 4배 높일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해가 갈수록 동박을 더 필요로 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은 과거 연성회로 기판용 동박 사업을 꾸리기도 했지만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이를 매각했다"며 "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사업을 감안해 동박사업에서도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