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LG화학과 SK아이테크놀로지(SKIET), 한화큐셀 등 대기업들이 한국형 RE100(K-RE100)에 동참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RE100이란 오는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겠다고 약속하는 국제적인 캠페인입니다.
RE100의 핵심은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만든 전기만 쓴 것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전기의 양의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재생 전기만 골라서 받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일까요.
기사를 잘 보니 그냥 RE100이 아니라 K-RE100입니다. 한국형 RE100으로 불립니다. 올해 도입이 결정돼 제도 마련이 한창인 한국형 RE100은 국제적인 RE100 가입을 위한 사전준비단계로 보면 됩니다. 국내에서도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과 사용량을 늘리기 위한 정부의 정책을 묶어서 칭하는 말입니다.
LG화학과 SKIET, 한화큐셀 등이 K-RE100 제도에 참여한 것은 향후 아직 RE100 가입단계는 아니지만 RE100 참여를 위한 사전준비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LG화학·SKIET·한화큐셀 등 녹색 프리미엄 참여
그런데 쏟아진 기사를 보면 조금 의아한 표현들이 많습니다. '사업장에서 필요한 전력 100%를 친환경 전력으로 사용한다'는 말이 쓰였습니다. 알아보니 한 회사의 보도자료에 쓰인 문구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사업장 전력의 100%를 친환경 전기로 쓴다는 표현은 맞는 말일까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100% 맞는 말은 아닙니다. 한국형 RE100이 가진 한계 때문입니다.
이해가 어려운 독자를 위해 한국형 RE100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한국형 RE100은 신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인정하는 총 다섯 가지 방법을 두고 있습니다. 이중 해당 기업들이 참여를 약속한 이행수단은 바로 '녹색 프리미엄'입니다.
녹색 프리미엄은 기존 전기 소비자가 전기요금과 별도의 추가 요금을 한국전력에 납부하고, 추가요금만큼은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제도입니다. 한전은 기업으로부터 추가요금, 즉 녹색프리미엄을 받아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에 사용하게 됩니다.
다만 녹색 프리미엄은 사고 싶다고 누구나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녹색 프리미엄 사업을 주도하는 기관은 한전입니다. 한전은 지난 1월부터 녹색 프리미엄 입찰을 시작해 지난 9일 낙찰기업을 발표했습니다.
바로 LG화학과 SKIET, 한화큐셀 등이 녹색 프리미엄 낙찰에 성공한 기업들입니다. 이 기업들이 같은 날 녹색 프리미엄 참여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유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금전적인 혜택은 없지만,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형 RE100에 참여하고 있다는 홍보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우린 친환경 전기만 써요?' 안되는데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녹색 프리미엄을 통해 낙찰된 만큼의 전기는 한전이 '재생에너지 사용분'으로 '인정'을 해주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녹색 프리미엄에 참여한다고 해도 해당 기업의 사업장에 들어오는 전기가 실제로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것은 아닙니다. 기존에 받던 전기일 뿐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직접 발전한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닌 이상 외부에서 전기를 받을 때는 모두 한전의 송·배전망을 통해야 합니다. 한전은 발전 방법에 따라서 구별해서 전기를 공급해주지는 않습니다. 사업장에 들어오는 전기가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것인지, 석탄 화력으로 생산된 것인지,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국 내 사업장이 글로벌 RE100 참여를 선언하기 어려운 이유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녹색 프리미엄에 참여한다고 해서 '사업장에서 필요한 전력 100%를 친환경 전력으로 사용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틀린 얘기입니다.
위 회사 중 일부는 녹색 프리미엄 참여 소식을 알리며 ''한국형 RE100 제도 도입에 동참하며 국내 사업장에서도 RE100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라는 식으로 오해할 여지가 없는 정확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업은 '사업장 필요 전력 100%를 친환경 전력으로 사용한다'는 표현으로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그대로 보도한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녹색 프리미엄? PPA?
해당 기업은 녹색 프리미엄 제도에 대해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낙찰자에게 공급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지만 이것도 오해 소지가 있습니다.
이 설명은 녹색 프리미엄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전기만 지정해 공급받는 PPA(Power Purchase Agreement)에 대한 설명으로 더 적합해 보입니다.
PPA도 한국형 RE100의 이행수단 중 하나입니다. PPA는 녹색 프리미엄과 달리 온실가스 배출 감소 실적으로 인정받는 혜택도 있습니다. PPA에 대한 설명이 더 궁금하다면 지난 2월9일자 [에너지워치]한국형 PPA, 한전 형이 거기서 왜 나와?를, 한국형 RE100에 대한 내용이 더 궁금하다면 지난 2월8일자 [에너지워치]그 전기 말고 이 전기 주세요를 참고해보세요.
#한국형 RE100 참여는 '굿 뉴스'
비록 오해는 있지만 해당 기업들이 금전적인 이득이 없는데도 녹색 프리미엄과 같은 한국형 RE100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이 기업들은 제도가 마련되는 대로 다른 한국형 RE100 이행수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침입니다.
RE100 참여는 급변하는 기후환경 악화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글로벌 추세입니다. 애플과 테슬라,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협력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도 RE100 가입이 숙제입니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한 번에 되지는 않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고, 이렇게 생산한 전기만 따로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결과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전기 발전단가가 기존 원자력발전이나 석탄화력발전보다 싸져야만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며 한국형 RE100 참여는 그 기초가 될 것입니다.